이웃은 서로 같지 않다. 그런데도 서로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동일화하는 것이 이웃의 논리이기도 하다.
황도는 달지 않고 오로지 수박만이 달다 수박이 달고 황도는 달지 않다 황도보다 수박이 훨씬 더 달다 수박이 황도보다 더 달다 수박과 황도는 똑같이 달다 수박도 달고 황도도 달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말에 H는 그것과 그것은 같지 않다 그것과 그것은 절대 같지 않다 그것과 그것은 같지 않기 때문에 비교 할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오성용, <그것과 그것은 같지 않다>)
수박과 황도 중에서 어느 것을 먹을 것인가. 수박과 황도를 모두 먹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들에게 그것과 그것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어느 하나를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과 그것은 같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동일화의 폭력은 곳곳에서 실현된다. H는 “그것은 같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렇게나 화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여 그만두었다.” 그것들이 왜 다른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해도, 같지 않은 그것들을 아무렇게 처리하는 사람들과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웃과 이웃은 ‘같지 않다.’
이수진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에서는 자신만의 취향으로 다른 사람을 규정하는 폭력, 어떤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다른 이웃을 차별하고 소외시킬 때 발생하는 폭력의 구조를 집요하게 묻는다.
고양이를 사랑한 여자와 헤어진 남자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버틀러)에 갔다가, 고양이 비애호가들의 모임인 안티버틀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안티버틀러들의 주장은 이렇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그들만의 기준으로 그 밖의 것들을 보통으로 규정지어버리”고 “스페셜을 군집으로 키워버리는” 무리라는 것이다. 안티버틀러들은 “무리 짓기”를 통한 차별과 배제의 상황은 결국 “취향 추구의 변질”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