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때때로 자명한 실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어디에 어떻게 실재하는가? 따져 물으면 어렵다.
때때로 그것은 내가 밟고 선 땅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국사책에서 배운 한민족과 겹쳐졌다가, 일제치하 독립투사들, 한국전쟁의 무명용사들, 그리고 민주화열사들의 헌신으로 힘겹게 일구어낸 정의로운 공공선의 뜨거운 구현체인 것도 같고, 주민등록번호를 부과하고 내 신상을 관리하고 세금을 매기는 걸 볼 때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을 때도 있다.
이렇듯 국가는 내게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계망 속에서 상이한 성격을 드러내고 그를 마주한 나에게도 상이한, 때로는 상반되는, 심지어 어떤 때는 모순되는 역할을 부과한다. 그러므로 상황논리적인 맥락을 다 떼어낸 채 국가 일반을 말하기란 난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