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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피, 죄의 자국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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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희생시킨 법의 다른 이름 역시 ‘아버지’다. 아버지들이 남긴 그 기나긴 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 것인가. 정용준의 <당신의 피>는 “이십사 년 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으로 되돌아간다. 그 사건의 살해범인 남자가 어느 날 ‘나’를 찾아온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신부전증을 앓게 된 남자가 ‘아버지’라고 하면서 ‘나’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으로 온 것이다. 살해사건 후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자랐고 지금은 개인병원 신장투석실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명랑하게 어울려 생활하고 놀라운 식탐을 보이자 ‘나’는 “역겨웠고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 ‘나’는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몸속에 남아 있는 피를 투석기에 모두 돌리면 나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당신의 피’를 모두 지울 수 있을까. 내 몸 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는 어쩔 수 없는 죄의 자국이다. “모든 걸 순식간에 괄호 안에 가둘 수 있었지만 딱 하나 그가 가둘 수 없는 게 있었다. 아버지였다.”(손홍규, <푸른 괄호>) “내 죄의 유일한 근원”인 아버지를 투명하게 만들어서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는, 유례 없는 인류”(손홍규, <투명인간>)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도 아버지는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 역사다. 아버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포함한 역사 전체를 부정해야만 했다.  
 
한순미, <어두운 시대를 향한 반란>,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12-113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1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