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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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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죽음을 파괴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죽음에게 증여하는 마지막 방법이 남는다. 한 망상증 환자는 ‘먹이’를 찾아달라고 호소한다.(정용준, <먹이>) 그 ‘먹이’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고사는 맹수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에게 “먹이는 곁에서 실존하는 죽음이자 제 몸에 꼭 맞는 관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먹이’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고 사는 ‘죽음’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지금 잃어버린 먹이를 찾아달라고, 아니 죽음에게 자신을 삼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절절한 호소가 이르고자 한 곳은 죽음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법이 지배하는 세계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법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먹이’의 다른 이름은 ‘죽음’, 즉 ‘법’이다. 법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법의 수호자인 경찰이 대답한다. “세상은 원래 강도와 같아서 우리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꼴을 못 보지.”(손홍규, <얼굴 없는 세계>)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이 청년이 앞으로 어떤 인간으로 태어날 것인지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 순간부터 인간의 적은 인간이었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치솟는 증오심을 느꼈다. 아무도 청년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 청년은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 청년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 청년은 그들 가운데 누가 자신 앞에서 강도를 당한대도 모른 체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니, 자신이 그런 강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간절히 바랐다.(손홍규, <얼굴 없는 세계>) 청년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완벽하게 태어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치솟는 증오심”과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게 된” 다음에는 “자신이 그런 강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용산참사를 지켜보며 무력했던 나날들을 견디면서 쓴”(<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이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은, ‘법’이 우리의 것이 더 이상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과, “강도와 같은 세상”에서 “강도” 같은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예감이다.  
 
한순미, <어두운 시대를 향한 반란>,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10-112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1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