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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쳐지지 않는 오월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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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그날은 겹치는 시공간에서 상기되지만 명확하게 번역되지 않는 외국어처럼 다가온다.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 ‘나’는 버클리에 있는 한국어를 배우는 모임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해나를 만난다. 버클리에서 “내가 태어난 곳에서 30여 년 전에 있었던” “May, 18th”를 듣는 것은 “마치 영어가 사건에 객관을 주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낯선 경험이다. “massacre”가 “학살하다”로 번역될 때 주는 건조함처럼, 영어로 번역된 김남주의 <학살2>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 누군가 그 누군가가 쓴 것 같았다.” 해나와 만나지 않은 3년 동안, ‘나’는 일본 교토로 여행을 갔고 거기에서 또 광주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바의 주인인 60대 초반의 남자는 그의 친구가 만들었다는 ‘교슈 시티’라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光州 City”라고 적는다. 오월 광주 30주년에 해나를 다시 만난 ‘나’는 해나가 망월 묘역에서 받은 김남주의 <학살2>가 “60년대 후반 남미의 상황을 그린 시 같다.”고 여긴다. 같은 시는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광주의 그날은 버클리와 교토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이다. “5월”은 “그 사이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중간에 교토가 점처럼 찍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공기로 흐르고 있었다.” “겹쳐지는 밤이었다.”(<그럼 무얼 부르지>)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에는 가 닿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건 좀 신기할 수도 있지만 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확실한 이야기다. 어떤 같은 밤들이 자꾸만 포개지는 나의 시간 속에서도 말이다. 몇 번의 5월의 밤이 포개지는 나의 시간 속에서 말이다. (…) ####년 광주 시멘트 건물 회색 복도 오월 마지막 남은 며칠, 그것은 역시나 내가 모르는 시간으로 내가 더하거나 내게 겹쳐지지 않는 시간들이었다.(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러나 80년의 오월은, 그렇게 여러 밤과 오월이 겹쳐지고 포개지는 가운데도 겹쳐지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아무리 5월을 만나고 다시 만난다 해도 똑같은 5월에 다가갈 수 없고, 아무리 번역하고 또 번역한다 해도 ‘그날’의 ‘이야기’와 겹쳐지지 않는다. ‘나’는 안다, “몇 개의 장막”을 거두고 “그 앞으로 직선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우리는 그날을 과거시제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 사람들이 “마치 이야기가 끊어지면 안 될 것처럼”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매일 오후’ ‘어제의 일들’을 이야기 한다. “어제는 남자의 몸이 작아졌고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게 밝혀졌고 그보다 일 년쯤 전에는 사월에 눈이 내렸으며 일본에서는 큰 지진이 일어났고 지진 후에는 쓰나미가 몰려왔으며 그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무얼까.”(박솔뫼, <우리는 매일 오후에>) 지나간 모든 일들을 한 문장 안에 한꺼번에 넣는다. 우리에게 역사는 “어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어제 알게 된 일”이다. 광주의 오월, 그리고 일본대지진과 고리원전의 재앙은 일어난 일인데, 그것들은 직접 가 닿을 수 없는 과거, 바로 ‘어제 알게 된 일’이다. 박솔뫼의 소설이 ‘안 되는 문장’으로 된 것은 “말의 폭주, 어느 순간 말을 통제하지 않기로 작정한 작가의 분노” 즉 “원한과 복수심의 직접적인 충족”(김형중, <‘탈승화’ 혹은 원한의 글쓰기>)의 결과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또 하나의 기원을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테러’의 기원에는 오월의 기억 또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순미, <어두운 시대를 향한 반란>,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5-107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0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