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오월에서 잉태된 ‘테러리스트들’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손홍규의 ‘테러리스트’ 연작은 오월의 아픔을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최후의 테러리스트>의 주인공은 아들 명수를 잃은 아버지 ‘박’이다. 그는 카빈총을 자진신고 하러 가는 아들의 친구 종관을 만난 순간 “자신을 사로잡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종관은 그해 5월 21일, 도청 앞에서 명수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자 복수하겠노라고 맹세했었다. ‘박’이 종관을 찾아가서 하는 말, “자네, 총 있지?” “내게 그 총을 좀 빌려주게나.…복수하고 싶네.” (손홍규, <최후의 테러리스트>) ‘박’은 아들 친구를 대신해 ‘복수’를 감행하는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는다. 공기총을 사격하는 방법을 배우는 등 여러 차례의 복수를 시도하였으나 좌절되고 만다. 결국 광주를 떠나기로 작정한 ‘박.’ “그러나 박의 내부에는 전보다 더 강렬한 복수심이 꿈틀거렸다.” 뚜렷한 복수의 대상인 전두환이 바로 눈앞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백담사 주위를 돌며 암살을 시도하지만 이번에도 실패로 끝난다. 그러는 사이, 스무살의 명수가 “사진 속에서 늙었”고 “단 한 사람도 암살하지 못한 늙은 암살자는 자신이 이 시대 최후의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적을 향한 복수를 다짐하던 ‘최후의 테러리스트’의 뒤를 이은 것은 <최초의 테러리스트>에서의 정수다. 죽은 명수의 형인 정수는 “광주를 겪은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고통”과 “무차별적 증오심이 치솟는 걸 느낀다.” 그는 항상 이런 물음과 확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분별있는 증오심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만약 증오가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증오는 존재치 못했을 거다.” 오월의 기억이 남긴 ‘분별없는 증오심’은 1980년 5월 18일 미 서부 워싱턴주에 있는 쎄인트헬렌스 화산 폭발 후 “성층권까지 올라간 화산재”와 접속한다. 정수의 아들 재호는 말한다. 화산재는 “아직도 세계를 떠다니”다가 “그 먼지들도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겁니다. 우리들처럼.” 오월의 화산재는 명료한 적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증오하는 ‘최초의 테러리스트’를 잉태했고, 이후 ‘테러리스트들’을 낳았다. “삶은 우리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암살자와 같은 거야. (…) 우리는 끊임없이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암살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어. (…) 그 공포를 견딜 수 없거나, 혹은 꼭두각시처럼 살기 싫어졌을 때, 우리는 방아쇠에 들어가 있는 암살자의 집게손가락에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올려놓게 되지.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몰라.”(손홍규, <테러리스트들>) 삶이 바로 ‘암살자’다. 우리는 언제든 살해할 것 같은 위협을 주는 삶을 견디지 못할 때 암살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간신히 혹은 겨우 스물하나의 사내들”은 “지금 막 암살자의 집게손가락 위에 자신들의 집게손가락을 올려놓았다.”(<테러리스트들>) 우리 암살자들, “테러리스트들”은 오월의 화산재에서 잉태되어, 암살자와 같은 세계에서 자랐고, 아직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월의 후예들이다. 
 
한순미, <어두운 시대를 향한 반란>,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3-105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0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