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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의례들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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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애양원에 있는 박물관에 가면 입구에 여기에 살고 있는 한센병 치유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사진 위에 이들이 이곳의 주인이라고 써 있다. 이 문구는 역설적으로 과거에 이들은 이곳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센병은 치유되더라도 그 흔적이 신체에 남아 있는 특성을 가진 질병이다. 한센병 치유자들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흔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절대적 격리 상태에 놓였던 그들은 질병이 다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격 박탈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이 자신의 얼굴사진을 박물관에 전시한다는 것, 또는 전시에 동의한다는 것은 일종의 실존적 ‘혁명’이다. 이 사진들은 사회적 차별에 의해 자아를 상실했던 사람들의 얼굴의 재현을 넘어서서 인격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자 그 증거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의 역사관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초상화도 재미있는 재현 및 사회적 치유의 사례이다. 이 초상화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신의 손가락 인장들을 하나씩 찍고, 다수의 방문객들이 여기에 동참하면 할머니의 얼굴 모습이 드러나도록 기획한 작품이다. 손가락 인장 찍기는 할머니들의 고난과 슬픔에 공감한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고난과 슬픔에 동참함으로써, 지워지고 잊혀질 뻔한 존재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존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으로부터 알려졌다. 이 고백은 위안부라는 부정적 스티그마의 부정이자 역사의 침묵을 깨는 증언이 되어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들의 고난에 공감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의 심리적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그림그리기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만들어진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핀 꽃’은 이들의 개인적 슬픔과 아픔을 사회적으로 공감하도록 하는 매체가 되었다. 이들의 그림은 상흔과 초월이 만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그림이나 사진 전시, 나아가 손가락 그림 만들기는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과 그것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의례들이다. 여기에는 타인의 슬픔에 대한 주체들의 공감과 자신의 현존재를 감싸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자기초월의 요소들이 깃들어 있다. 라카프라는 ‘공감’을 한편으로는 무감각에, 다른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일체화에 맞서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그는 슬픔을 가진 희생자들의 트라우마적 경험에 공감한다는 것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동시에 언급했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32-33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3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