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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죽음’과 ‘죽어있는 죽음’을 구별하는 것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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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과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정여부에 따라 추도의례의 운동성이 달라진다. 희생자 뿐 아니라 추도를 하려는 사람들조차 사회적 타자로 낙인찍혀 있는 경우, 이들의 죽음에 대한 추도는 매우 종교적인 추상성을 갖거나 민속적 의례에 의존한다. 민주화이전시기의 4ㆍ3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굿을 통해 표현되었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희생자들의 죽음은 슬픔의 원천이 아니라 원(怨)이나 한(恨)의 원천이 된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사적 영역에 속하다가 점차 공적 영역으로 이동해가며, 희생자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죽음의 문제에서 ‘살아있는 죽음’과 ‘죽어있는 죽음’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표현되는 ‘영원한 안식’이 후자라면, 전자는 ‘해명되어야 할 죽음’에 가깝다. 이 양자의 차이가 잘 드러난 사례가 1997년 광주 5ㆍ18 묘지조성논란이다. 당시 5ㆍ18묘지를 새롭게 조성하고 망월동묘지에서 ‘열사’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옮길 때, 그 범위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망월동묘지에는 ‘5월열사’ 뿐 아니라 이른바 ‘5월운동’ 과정에서 그들의 뒤를 따랐던 ‘민주열사’들의 상당수가 묻혀 있었으나, 5ㆍ18 특별법에 의해 이들은 서로 구별되는 범주로 규정되었다. 5ㆍ18 유족들은 5월열사들이 민주유공자가 되고, 5ㆍ18묘지가 국립묘지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특별법에서 규정되지 않은 민주열사들을 5ㆍ18 묘지로 함께 이장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5월열사가 자기 재생산의 산물로서의 민주열사와 분리되는 것을 의미했고, 살아있는 죽음을 죽어 있는 죽음, 즉 영원한 안식으로 전환시키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이런 죽음의 정치학은 한국의 민주화이행과 공고화과정에서 광주의 지역정체성을 규정했고, 독특한 역사적 감성을 주조했다. 1995년 창설된 광주 비엔날레의 사회적 기초는 예향론이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인 광주의 문화도시 프로젝트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의 예향론은 민주성지론과 조화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맥락이 아니라 경쟁적 상호배제적 맥락에 있었다. 민주성지론은 1980년 광주 항쟁이 처절한 패배로 끝난 이후 지역과 도시를 지키는 집단적 심성이자 감성에 기초했다, 성스러운 죽음에 기초한 민주성지론이라는 지역정체성 문제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국면에서 강렬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이는 1987년과 199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연거푸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 기초한다. 특히 호남에서는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서 거푸 실패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주성지론은 그런 진정성의 철학에 기초했다. 그것은 꽃처럼 ‘순수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죽음’에 기초하고 있었고, 그것의 핵심적 장소는 망월동이었다. 민주 성지로서의 망월동은 ‘더럽고 가식적이며 추한’ 반민주인사들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소임을 의미한다. 성지는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비원’을 담고 있었고,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초월적 장소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현실을 만들어가는 힘이 있었다. 사회적 감성은 종종 그것의 재현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5ㆍ18을 주제로 한 영화 중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이 1996년 제작된 <꽃잎>, 2000년 제작된 <박하사탕>, 2007년의 <화려한 휴가>이다. 이 세편의 영화는 5ㆍ18에 관한 감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텍스트들이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반응을 통해 광주시민들의 감성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꽃잎>과 <박하사탕>은 매우 훌륭한 영화들이지만, 광주시민들의 상당수는 이 영화들이 매우 은유적으로 5ㆍ18의 상처를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본격적인 5ㆍ18영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서사적인 <화려한 휴가>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5ㆍ18 영화논쟁은 수그러들었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9-31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