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좀비보다 못한 자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무기력하고 지독한 근시인 자들이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상품들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결코 채워지지 않을 허기와 충동에 이끌려 상품들의 집적 공간, 이를테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혹은 쇼핑몰 같은 곳을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관계의 딜레마를 기꺼이 껴안고 감당하려는 고슴도치들은 결코 아니다. 욕망의 무한 증식과 쾌락의 지속적인 유예라는 개미지옥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살아 있으되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역설을 감당해야만 자들이다. 그래서 차라리 그들은 좀비zombi를 닮았다. 물론 오늘날의 소비자를 좀비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칠 성싶다. 그러나 여기서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소비주의 사회의 척도인 쾌락-만족-능력이라는 바로 그 계열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이 계열에 온전히 부합할 수 있는 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현재 세계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의 늪에 빠져있다. 고용 불안과 만성적인 실업 사태는 지구촌 곳곳에 광범위한 빈곤의 문제를 낳았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빈곤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신빈곤이라고들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여파로 일자리가 불안해지면서 물가는 오르는 반면 예전처럼 자신의 소득만으로는 결코 윤택한 삶(풍족한 소비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 계층의 박탈감이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진단도 이미 내려졌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살림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이른바 워킹푸어 계층이 급증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탓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버리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어느덧 오늘날의 젊은 층을 규정하는 용어가 돼버렸다. 여기서 거의 클리셰가 돼버린 사회적 양극화라는 용어를 들먹이며 새삼스레 호들갑 떨 생각은 없다. 양극화라는 말을 오늘날 너나없이(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그 현상이 지시하는 구체적이고 참혹한 실감은 진작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은 이게 무척 심각한 일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쾌락-만족-능력 계열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앞서 이 시대의 소비자들을 좀비에 비유한 바 있지만, 소비의 삶으로부터 자의건 타의건 한 발 비껴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은 그들의 명칭이야 어찌되었건, 좀비보다 못한 자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명중, <증오사회>,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89-90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8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