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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친밀성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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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화는 우화이다. 인간이 지닌 실존적 상태로서의 고독은 오늘날 중요하지 않다. 이를테면 인간의 존립기반으로서, 굳이 과거 유행했던 용어로 말하자면 토대(하부구조)로서의 고독이 문제이다. 이제 고독은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본질이다. 즉 인간의 고독이 아니라 고독한 인간이 사태의 핵심이다. 이 ‘고독한 인간=소비자’는 고슴도치의 지혜를 떠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내친 김에 바우만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도록 하자.<<리퀴드 러브>>의 서문 중 일부분이다. ‘관계’라는 말 자체가 혼돈만 더하는 것 같다. (…) 그것은 애매한 위협과 암울한 전조로 가득 차 있다. 즉 격리의 두려움과 함께함의 즐거움을 한 입으로 동시에 말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전망에 대해 ‘관계 맺음’과 ‘관계’라는 용어로 말하기보다 점점 더 흔히 (…) ‘연결하기’나 ‘연결됨’ 등 conn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추세이다. 파트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네트워크’라는 말을 선호한다. ‘관계’라는 말이 놓치고 있지만 ‘연결됨’이라는 말이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네트워크’는 연결하는 동시에 연결을 끊을 수 있는 망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그것은 상호 관여됨을 부각시키는 ‘관계’, ‘연대감’, ‘파트너 관계’ 그리고 그와 비슷한 개념들-이것들은 동시에 그와 정반대되는 것, 즉 관계의 단절은 배제하거나 잠자코 무시한다-과 다르다. (Z. 바우만, 권태우‧조형준 옮김,<<리퀴드 러브>>) 그의 지적처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관계relationship 대신 네트워크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담고 산다. 이는 관계라는 말이 혹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어떤 이미지가 환기시키는 애매함, 위협 그리고 암울함을 회피하거나 거부해보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른바 관계 맺기가 미구에 불러올지도 모를 심리적 또는 정서적 부담을 감수하는 쪽보다는 언제든지 연결하고 끊기가 가능한, 그야말로 ‘쿨cool’한 네트워크 쪽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 까닭에 오늘날 우리가 특정한 관계에 따라붙는 상호 관여적 징후들, 예컨대 ‘걸리적거림’ 혹은 ‘질척거림’ 따위를 도무지 참아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유연하고 용이한 소통이라는 가상 아래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를 선호(이를테면 각종 SNS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반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상호 관여적인 감정적 자질들을 극도로 꺼려한다. 이러한 상태를 에바 일루즈라면 아마도 차가운 친밀성cold intimacies이라고 불렀을 법하다. 쿨 하건 차갑건 간에 그와 같은 자질이 일상적인 관계 맺기의 장을 잠식하고 있는 한, 그 속에 사랑이나 연대감과 같은 인륜성의 감정이 들어설 여지는 희박하다.  
 
정명중, <증오사회>,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87-88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8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