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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멸의 정치의 가사의 정치로의 이행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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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의 절멸의 정치는 해방에도 불구하고 연속된 측면이 있다. 아니 연속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강화되는 모습을 강조해야 한다.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분단국가의 형성과 이에 따른 반체제의 위험요소들이 다시 감시와 격리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제정과 이에 후속하는 보도연맹의 조직은 식민지하 사상범 관리의 기술을 반복했다. 그것의 결정적 계기는 1948년 4․3사건과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이었다. 김득중은 여순사건의 핵심적 의미를 ‘빨갱이’의 탄생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일제하에서의 ‘주의자’의 전화된 모습이었고, 이후의 전쟁과 전후체제를 가로질러 재생산되는 ‘적’이었다. 이런 적들이 출현하거나 출현한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비상’사태로 규정되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상사태는 이들의 생물학적 생명을 빼앗는 상황을 초래했다. ‘예방학살’과 ‘초토화’는 절멸을 포함한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은 이에 대한 반작용, 즉 ‘반국가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을 낳았고, 이것은 다시 부역혐의자에 대한 학살이라는 연쇄고리를 만들었다. 전쟁기간에 적에 가담했거나 이롭게 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들,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분단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은 연대책임의 주체이자 연좌제의 대상이 되어 국민적 시민권이 박탈되거나 유보되었다. 더 넓게는 적으로부터 점령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자유롭지 않았다. 여기로부터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정치사회적으로는 죽어버린 ‘가사’의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범주가 생성된다. 이들은 부재하는 현존재absent presence가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이후 절멸의 정치는 가사의 정치로 이행한 셈이다. 한국전쟁 전후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에서 주어진 것은 슬픔이었으나, 국가권력의 대행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적 추모와 애도는 냉전분단체제하에서 불가능했다. 좌익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의 가족은 통곡의 자유가 허용되었으나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유족들에게는 통곡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경계를 넘었던 사람들은 감금되었고, 이들에게는 전향이 강요되었지만 사회에는 이들의 존재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처럼 전후에도 전향의 문제는 가사의 정치에서 중요하다. 남북간 체제경쟁은 전쟁기의 심리전의 형태로 지속되었다. 사상범들에게는 전향이라는 절차가 강요되었다. 전향에 대한 상대어는 이를 시행하는 국가권력의 담당자에게는 미전향이나 양심투쟁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비전향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상이나 정치이념이 양심이라는 범주와 일치되어 있다. 전향한 사람들에게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빨리 주어졌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비전향장기수들이 석방되고 또한 남북한 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탈분단 상황이 진전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위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제하에서 사회적 타자로 간주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절대적 격리정책의 유산은 큰 희생을 불러 왔다. 해방이 되었지만 아직 일본인 관리들이 물러나지 않았던 소록도나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상당수의 환자들이 학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절멸의 정치의 일부인 우생수술은 놀랍게도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고, 이런 관행은 일부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행해졌다. 근대권력의 죽임의 정치는 절멸 뿐 아니라 생물학적 삶과 사회적 죽음이 혼합된 가사의 정치를 수행한다. 가사는 죽음과 삶의 중간영역일 뿐 아니라 중간과정이기도 하다. 죽음으로의 이행은 속도나 방식에 따라 서서히 고사시키거나 일시에 절멸시키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듯하다. 또한 과거의 죽음들은 현재의 지평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들로 구분된다. 여기서 살아있는 죽음이란 과거의 죽음이 현재를 창조하는 힘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과거의 죽음이 현실창조의 과정에 개입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슬픔의 표현방식으로서의 추모나 애도는 이런 다양한 삶과 죽음의 정치의 장에 속해 있다.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의 생산에는 죽음과 삶의 상호이행이라는 과정론적 논의도 필요하다. 가사의 정치와 대비되는 것이 살려냄의 정치이다. 우리는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4ㆍ3사건이나 그 밖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죽은 이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분명히 다른 범주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 성원들이 대규모로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건은 살아남은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분열이나 실어증aphasia과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자신들의 슬픔은 통곡을 통해 정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그 고통을 신음에 담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 슬픔은 통곡을 통해 표현되거나 탄식으로 표현되며, 그런 것이 정치사회적으로 허용되지 못할 때 마음 속으로만 삼켜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슬픔은 공식적인 추도를 통해 표현되지만, 그런 추도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금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희생자들의 과거의 죽음은 여전히 현재의 지평에서 살아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7-29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