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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정치 또는 죽임의 정치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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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감성으로서의 슬픔은 식민주의와 전쟁, 냉전-분단이라는 구조적 힘들에 의해 주조되지만, 이들은 모두 근원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즉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은 대규모의 연속되는 상실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죽음의 정치 또는 죽임의 정치의 직접적 산물로 인식되면서 강화되었다. 모든 죽음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지만, 그 중에서도 비참한 죽음으로 인식되는 것들이 감성적 슬픔과 보다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에서 집단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는 전쟁 뿐 아니라 기아, 전염병,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한 절멸의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푸코는 근대권력의 중요한 특징을 생권력으로 정의했지만, 때때로 근대권력은 음벰베가 말하는 절멸의 정치Necropolitics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는 2001년의 9ㆍ11사태 이후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죽임의 정치를 언급했는데, 사실 절멸의 정치는 나치의 인종청소와 홀로코스트, 나아가 세계의 각지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를 관통하고 있다. 이 죽임의 정치 또는 절멸의 정치는 사회적 소수자의 타자화, 격리와 강제노동, 그리고 대량 학살로 구성된다. 소수자의 사회적 타자화는 인종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의 작동결과이기도 하다. 죽임의 정치는 정치공동체를 위협하는 적대적 이념과 사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의 제거라는 명분에 의해 수행된다. 다른 인종과의 혼혈, 또는 이념적 오염의 방지라는 정당화의 논리가 작동한다. 인종주의는 근대 과학사상의 하나인 우생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불편한 진실은 우생학이 독일에서 뿌리내리기 전에 자유주의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먼저 발전했고, 또한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북유럽에서 강력하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우생학적 사고는 일본에도 뿌리를 내렸고,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았을 뿐 아니라 이를 ‘과학발전’에 필요한 자료로 삼았다. 일본의 대학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동학군의 두개골 표본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절멸의 정치는 1925년 치안유지법 제정이후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대상으로, 그리고 1920년대에 전개된 우생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절멸의 정치는 한편으로는 사상의 영역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건 위생의 영역에서 진행된다. 두 차원에서 국가나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순수한 공동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내부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이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격리시키며, 종국에는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사상의 영역에서는 1930년대 초반부터 고등경찰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을 전향시키고, 이들을 관리하는 체제를 발전시켰다. 일제는 총력전 체제를 준비하면서 사회를 사상보국연맹으로 조직화하였고, 사상 전향자들을 대화숙(大和塾)이라는 기관에 소속시켜 ‘갱생’하도록 조치했다. 이들은 전시체제의 형성과 함께 사상범예방구금령을 통해 예방 구금의 대상이 되었고, 방공방첩이라는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 외부의 적과 연결될 수 있는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어 일상적 감시대상이 되었다. 위생의 영역에서 표적이 된 것은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위생의 영역에서는 콜레라나 페스트와 같은 급성 전염병이 개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적이었으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방역과 검역 활동이 이루어졌다. 식민지 위생경찰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가호호를 검색하여 환자를 찾아내고 격리시켰다. 우생운동의 결과는 향토나 국가를 오염시키는 위험집단으로 한센병 환자를 지목하도록 했다. 식민지 지배의 초기에는 ‘부랑’환자들만이 단속대상이 되었으나 1930년대에는 모든 한센병환자들이 강제적 종생격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제도적 조치들은 이들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사회적 차별에 기초하였다.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지역공동체로부터 배제되었고, 축출되었다. 소록도 입소는 이들에게는 사회적 차별로부터의 피난이자 국가권력 앞에 몸이 발가벗겨지는 이중적 계기였다. 소록도는 환자들이 거주하는 유독지대와 직원들이 사는 무독지대로 구분되었을 뿐 아니라, 환자들의 갱생을 위해 법률 위반자를 가두는 형무소, 규칙 위반자나 지시불이행자를 가두는 감금실을 만들었다. 감금실에 유치된 원생들은 실제로 죽거나 단종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이 죽음이나 단종을 앞두고 느낀 감정은 이동이라는 환자의 시로 표현되었으나 그의 시는 단지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록도 원생들 모두의 감성이었을 것이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2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