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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안에 대한 헛된 몽상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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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이성으로 또는 혁명으로 세계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더불어 자아와 타자를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상호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물론 응당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호기(?)를 부리기조차 했다. 열에 들뜬 상태와 흡사한 이상주의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유감스럽지만 오늘날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이상은 피안에 대한 헛된 몽상이 됐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이상주의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전망이 미망이었음을 깨닫고 제 살길을 좇아 종적을 감췄다. 여기서 잠깐! 미망이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하는 명사이다. 한 무리의 이상주의자들이 지나간 시대를 명사 하나로 그렇듯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권한이 과연 그들에게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어쨌든 미망에서 벗어난 이상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혹은 사상적) 몸바꿈의 현란한 수사를 쏟아놓은 채 지독한 현세주의자가 돼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386’세대 운운하는 것은 적잖이 낯간지러운 일일 것이다. 자아와 타자를 또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전체로서 파악한다는 이념이나 사상은 이제 한갓 조소거리다. 이를테면 원시주의를 모토로 움직이는 소규모 공동체 시스템 안에서라면 모를까, 그와 같은 이념은 파편화되고 불확정적인, 그야말로 포스트모던 한 현실 앞에서 초라하고 왜소하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슬로건은 유아기의 망상 같은 것이 돼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는 단단한 모든 것이 대기 속에 녹아버리는 현기증의 시대를 아무런 전망 없이, 게다가 독한 회의와 허무의 제스처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저 관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제는 적잖이 진부한 이야기지만, 20세기 끝자락에 우리는 이미 거대서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소비에트 체제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그 종언을 부추겼다. 물론 20세기를 주도했던 거대서사가 해방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동일자의 횡포이자 억압이었다는 뼈아픈 자각도 한몫 했다. 거대서사라는 용어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대표 주자였던 리오타르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거대서사는 타자를 배제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횡포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중심부의 거대서사보다는 주변부로 밀려난 작은 서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그간 큰 이야기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어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에 매진해 왔었다.  
 
정명중, <증오사회>,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82-83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8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