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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과 이산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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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방 후의 상황은 어떤가. 아마도 지난 100년 동안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환희에 젖어 목청껏 소리를 냈던 경험은 1945년 8월 16일의 해방의 기쁨을 나타내는 ‘만세’였고, 그 이후에는 2002년 월드컵 대회의 승리의 함성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목청껏 소리를 냈던 것은 3․1운동 때였지만, 그때의 함성은 비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8월 16일의 함성은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의 목소리였다. 감성의 측면에서 보면, 해방은 감성의 대역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였지만 분단과 전쟁, 그에 뒤따른 빈곤은 그것을 방해했고, 죽음과 고통을 통한 ‘슬픔’의 사회적 재생산이 지속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후질서는 중국혁명과 한국전쟁이라는 두 개의 연결된 사건들과 이에 따른 분단국가의 형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 분단, 전쟁과 결합되어 있는 새로운 국가형성은 1948년과 1949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 과정은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창출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의 분단은 동아시아 분단의 일부이며 후자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분단은 한 민족 두 국가 상태를 만들어내고 월남과 월북, 납북 등 다양한 월경을 통해 원치 않는 새로운 이산을 낳았다. 분단과 전쟁은 경계 넘기를 수반했고, 전쟁 포로들의 체재 선택 또한 가족적 이산을 만들어 냈다. 휴전체제는 이런 가족적 이산을 항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가족 및 고향상실은 죽음과 함께 또 하나의 슬픔의 원천이 되었다. 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진행된 국가형성에서 전투원 뿐 아니라 무수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무력에 의존한 통일의지는 전쟁이라는 민족적 불행과 참화를 낳았다. 전쟁은 전투 뿐 아니라 감금, 투옥, 추방, 학살을 동반하면서 진행되었고 전쟁고아와 포로, 상이군인 또는 미망인이라는 사회집단들을 만들었다.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슬픔’과 이를 관리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졌다. 사회는 항상 개인들보다 거대했고, 국가는 사회보다 항상 큰 존재였다. 전쟁과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과 이산은 역사적 감성으로서의 슬픔을 재생산한 핵심적 계기였다. 전쟁을 경험한 이후 성립한 냉전적 분단체제하에서의 역사적 슬픔은 전쟁과정에서 형성된 적대적 분노, 전쟁에 대한 공포, 전쟁이 남긴 상흔에 의한 고통,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희망 등이 뒤섞여 복합적인 것이 되었다. 1960-70년대에 진행된 대규모 이농과 도시화, 산업화,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제에 의해 역사적 감성은 조금씩 변화되었으나 전쟁의 상처와 고향상실에 의한 향수와 슬픔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며 독재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형성된 비판적 감성도 항상 우회적으로 표현되도록 조절되었다. 한국전쟁이 한국근대사에서 집단적 감성을 규정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1980년 광주 항쟁과 좌절은 또 하나의 역사적 감성구조를 만들어낸 대사건이었다. 여기서 형성된 감성은 슬픔에 부채감을 더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 뿐 아니라, 역사적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의식이 그 사건이후에 많은 시민들에게 생겨났다. 광주시민은 도청에서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에게, 외지의 시민들은 광주라는 도시공동체에 부채감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민주화 이행기 내내 관철되었다. 이 부채감은 희생에 대한 공감 뿐 아니라 보다 나은 정치공동체를 향한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주항쟁이 이런 정의와 결합된 감성만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은 일방적이다. 민주주의로의 이행국면에서 사건의 진실, 즉 야만적 폭력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전시했을 때,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모두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는 이것이 도저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부정했으며, 일부는 당혹스러워했다. 이런 반응은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보수주의적 감성을 형성해갔다. 결국 정치적 감성을 달리하는 두 개의 국민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계층적 이해보다는 지역적 분할에 기초했고, 이것은 세계관의 차이, 그리고 정치적 감성의 차이를 구조화하여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2-24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