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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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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마르고 매사 짜증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곧잘 흥분한다. 그야말로 신경질적인 사람들이다. 적잖은 이들이 오늘날 그렇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 충족이 지연되거나 방해받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 반면 그럴수록 타인에게 너그럽지 않다. 예를 들어 주문한 음식 배달이 늦었다고 하자. 홧김에 배달원에게 인간적 모욕조차 서슴지 않는 이들이 꽤 있다. 이들의 관심은 그들의 욕구가 아무런 방해 없이, 그것도 ‘즉각’ 해결돼야 한다는 것뿐이다. 물론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할) 것이기에 욕구의 즉각적인 충족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30분배달제’와 같은 것을 늘 환영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반인권적인 영업방침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분초를 다퉈야 하는 배달원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짜증을 내고 욕설을 퍼붓는다. 간혹 이 짜증은 짜증을 일으킨다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한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때도 있다. 한데 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 앞에서는 정작 입을 다물어버린다. 사실 우리 모두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사슬 안에서 ‘빨리빨리’ 강박 때문에 만성적인 노이로제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먼 배달원을 득달했으면 했지, 그러한 구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저 깊은 원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 //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 가로놓여 있다 (…) // (…)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 이발쟁이에게 /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 정말 얼만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위의 시에서 보듯 시인 김수영은 사소한 것에 쉽게 분개하면서, 더 큰 것에는 분노하지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을 아프게 고발한 적이 있다. 시인은 소시민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옹졸함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라며 스스로 괴로워했던 것이다. 한데 오늘날 일상적이고 사소한 짜증에 능하면서 더 큰 사회적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는 우리의 습성을 그저 소시민적 옹졸함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즈음 시민들이 권력의 외압에 움츠려든 나머지, 용기가 부족해서 자잘한 것들에만 온통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내는 게 필요하다.  
 
정명중, <증오사회>,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79-81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