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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외 교원, 시간강사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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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비정규직 교수의 자살 소식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교원 역할에 합당한 지위 부재, 정규직 교수와 비교해 임금차별, 정규직 교수에 종속된 고용불안과 부당한 경쟁 그리고 희망 없는 미래는 비정규직 교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오늘날 시간강사 제도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경제적인 권위주의뿐만 아니라, 정규직 교수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합법화된 야만성의 상징이다. 시간강사는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법적 교원이었다. 하지만 현행 시간강사 제도는 박정희 정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다음해인 1962년 지식인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그리고 시간강사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 때문에 1977년 시간강사의 법적 교원 지위는 완전히 박탈됐다. 그 후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월 31일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을 마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의 산업화에 기여했던 우리의 양적 성장 중심의 교육을 가지고는 고도의 창의력과 높은 품격을 지닌 인간을 요구하는 미래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게 할 新한국인을 길러 낼 수가 없다. (…)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없으며, 한국의 학생들처럼 공부에 시달리는 나라가 없건만, 일터에서는 ‘불량품’ 인력으로 판정받는 것이 우리교육의 실상이다. 요컨대, 우리 교육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산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진단은 일견 옳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의 이념을 간과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즉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할 수 있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세계시민을 육성하려는 이념을 주목하지 않았다. 저 방안은 대학졸업 후 곧바로 세계를 무대로 창조적 돈벌이 능력을 갖춘 신한국인을 길러내는 것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오류가 대학 조직 자체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 조직은 “세계로 미래로 뛰자.”, “세계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김영삼 정부의 거센 구호에 떠밀려 학문공동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렸다. 대학 조직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이기를 자청했다. 대학의 교육과정은 기업의 필요에 맞게 개편되었다. 대학 조직은 산학협력단을 설치했고, 그에 따라 각종 기업 연구소가 대학의 심장부로 파고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회계’가 필수과목이 되고, ‘휴대폰학과’와 같은 계약학과도 생겼다. 대기업은 막대한 돈으로 교양과 전문지식을 샀고, 그것을 상품화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지식산업과 문화산업의 메카인 대학 조직은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규직 교수의 자리를 시간강사로 대체하고, 그로 인해 절감된 운영비용을 부동산이나 펀드 그리고 각종 영리사업에 투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들인 정규직 교수들로 구성된 대학 조직은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경제적 권위주의와 결합된 대학 조직은 겉으로는 아카데믹한 진지함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속으로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감추고 있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는 2010년 6월 29일 고등교육법을 개정함으로써 전임교수지만 비정규직 교수인 ‘강의전담교수’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30일 국회에서 시간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시간강사법’이 발빠르게 통과됐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시간강사의 신분은 교육공무원도 아니고, 연금 적용도 못 받는다. 처우개선 관련 재정추계 자체가 없다. 시간강사는 ‘교원 외 교원’, ‘무늬만 교원’, ‘반쪽짜리 교원’, 즉 미생으로 합법화된다. 말하자면 시간강사법은 교원 간 신분차별과 임금차별뿐만 아니라, 시간강사의 ‘솔거노비화’를 합리화하는 법이 될 공산이 크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2014년 1월로 유예된 ‘강사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 시간강사들을 대량해고하고 있다. 기업에서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시행하듯 대학에서도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버젓이 “VERITAS LUX MEA”, 즉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그리고 대학 조직의 목적은 “진리의 탐구”, “전통문화의 계승과 새로운 문화의 창조”, “지역사회개발을 위한 선도적인 봉사”에 있다고 적혀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대학의 정신은 한편으로 오로지 이윤창출만을 극대화하려는 편집증을, 다른 한편으로 학문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정신분열증을 보인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대학 조직에서 살아남기 원하는 비정규직 교수는 일종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준교육기관으로서 진리의 탐구에 몰두하기 어렵다. 그는 모멸감과 자괴감을 겪더라도 현실의 법칙에 충실히 따라야만 한다. 그는 아는 것과 사는 것, 가르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껴선 안 된다. 그에 대해서 “생각하지마! 눈앞의 것만 봐! 연구개미가 양심을 지키는 순간, 정규직 교수는 물 건너간 거라고!” 초자아는 명령한다. 대학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기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그에게 가언명령이 아니라, 정언명령이다. 대학 조직 안에서 개인의 자기파괴 현상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도덕불감증이 만연된 대학 조직 안에서 비정규직 교수가 정규직 교수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 보인다.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가 개선되고 신분이 안정될 수 없다면, 교육의 질적 성장은 어렵고, 진리의 탐구를 지속할 후속 세대의 양성과 입문도 기대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학의 주체는 더 이상 정규직 교수도, 비정규직 교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생도 아니다. 다름 아닌 대학 조직 자체가 바로 대학의 주체다.  
 
김기성, <조직의 역설>,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73-76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7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