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조직은 목적단체다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조직은 자연발생적 집단, 즉 가족 혹은 부족 등과 달리, 개인들이 자기유지와 자기실현을 위해서, 말하자면 완생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만들어서 운영하는 일종의 목적단체다. 조직은 개인들이 공동목적을 위해서 분업하고 상호 협조하는 유기체와 같다. 이때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이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단순한 집단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와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생>을 통해서 한국 사회 안에 있는 회사 조직의 구조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미생>의 결말 145수의 일부분이다. 감정적 얽힘을 최소화하려는 사내 에티켓, 업무 프로세스… 그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맞추는 사람들. 업무만 아니라면 크게 부딪힐 일도, 사적으로 시간을 나눠야 할 필요도 없는 관계. 이런 게 회사였지. 일 하나 하면서 무슨 일씩이나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학원이 아니라고. 여긴 직장이라고. 공부하지마! 공부해서 와. 하지 마라면 하지 마요. 이런 거에 충족감 느껴봐야… 우리만 힘들어진다구요. 그런데 왜… 외롭냐… 받아들인다. 수용한다. 그런 거 없다. 내 앞에 펼쳐진 판을 인정하는 것. 그것뿐이다. 맘에 맞는 팀과 함께할 수도, 스타일이 다른 팀과 함께할 수도. 나의 색이 바랠수록 관계의 긴장은 사라진다.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나는 무채색이다. 그것이 나의 색깔이다. 핵심은… 남아있는 것이다. 회사 조직의 목적은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따르는 사회의 목적, 즉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 조직은 성공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이윤창출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굴러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장치와 같다. 개인은 그 장치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톱니바퀴장치와 같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 안에서 개인들 간의 관계는 사무적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 관계가 설령 인격적이고 친밀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범위 안에 한정된다. 개인들 간의 관계망 안에서 조직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은 모든 것은 배제된다. 신입사원이 입사하게 되면, 누군가 그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가 조직에 유용한 물건인지 아닌지 업무에서부터 회식 자리에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평가하고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다. 조직 내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도태된 개인, 조직 내 내밀한 정치판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개인, 생산력의 내구연한이 다된 개인, 조직과 눈치껏 일심동체가 되지 못한 개인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폐기처분된다. 대체될 수 있는 잉여 개인은 얼마든지 있다. 실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조직이 체계적이고 자립적인 톱니바퀴장치가 될수록, 개인에게 조직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인공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자연물로 여겨진다. 개인에게 조직은 점차 운명으로 다가오고, 개인의 삶의 목적은 조직의 목적으로 대체된다. 그 결과 개인은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조직의 경영이념에 따라 노동하면 할수록 자기실현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소외로부터 오는 허탈감, 외로움, 우울함을 느끼면서, 결국 심리적 자포자기상태에 빠지게 된다. 개인은 조직 안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모른 척 해야만 하거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감히 묻고 따질 수도 없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라는 직장 선배의 충고는 그러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이러한 우울한 광경이 2013년 한국 사회 안에 살고 있는 개인의 무력한 현실이라고 할 때, 누가 과연 이를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기성, <조직의 역설>,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61-63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6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