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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지마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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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마! 눈앞의 것만 봐! 일개미가 임신을 생각하는 순간, 그 조직은 개판되는 거라고! 요즘 네티즌으로부터 최고의 웹툰이라고 호평을 받는 <미생>의 한 대목이다. <미생>은 비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한 장그래의 직장생활 적응과정을 실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이 한 조직에 속해 있는 한, 그는 자신의 고유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충동을 자발적으로 거세해야 한다. 조직 안에서 개인의 존재 이유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하는 데 있다. 개인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순간, 조직은 와해된다는 자연법칙에 대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개인은 조직의 욕구를 욕구해야만 한다. <미생>은 개인을 일개미로 비유한다. 실제로 일개미는 여왕개미의 산란을 위해 평생 일하다 죽는다. 간혹 일개미가 알을 낳기도 하지만, 그 알은 미발달된 상태로 여왕개미의 먹잇감이 된다. 만약 일개미의 알이 깨어난다면, 여왕개미의 조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인간의 조직과 곤충의 집단이 형식상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간의 발전된 문명은 다시 태고적 야만상태로 회귀해 버린 것일까? ‘미생’이란 두 집을 만들지 못해서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바둑 용어다. 미생은 상대방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판난다. 한 번이라도 헛수를 두면 전판이 무너질 수 있다. 그 때문에 미생은 매 수를 둘 때마다 불안하다. 미생은 최소한 두 집을 갖춰야 비로소 완생(完生)이 된다. 바둑판에서 두 집을 현실세계에서 뭐라 말할 수 있을까? 18세기 독일 관념론 철학자 칸트가 활동하던 당시 인간은 두 가지 기본조건, 즉 ‘교양’과 ‘소유’를 갖췄을 때, 부르주아 개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19세기 독일 유물론 철학자 마르크스의 눈으로 볼 때, 부르주아 개인이 ‘완생’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 개인, 즉 도시 임금노동자는 아직 완전히 살아 있지 못한 ‘미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미생은 바둑판을 뒤집을 혁명의 주체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미생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규직 노동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양이 있더라도, 돈이 없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는 미생, 즉 자율적이지 못한 개인이다. 교양이 없더라도, 돈이 많다면 얼마든지 완생처럼 행세할 수 있다. 교양은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악세사리가 되어 버렸다. 바둑판과는 달리,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한 집만으로도 완생일 수 있다. 미생은 완생이 되려는 부푼 꿈을 안고 조직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과연 한국 사회의 어떤 조직 안에서 미생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개인은 바둑판 전체를 완전히 꿰뚫어 보는 고수를 상대하는 바둑 초보자처럼 조직 안에서 애초부터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수 한 수 자신의 생각으로 집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응하기에 급급해서 자꾸 헛수를 두다가 죽어가는 운명에 처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조직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김기성, <조직의 역설>,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59-61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5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