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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할 것인가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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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은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인 뒤섞기와 혼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당파적 태도로 환원하거나 자기상품화 노력으로 매도하는 것에 우리는 맞서야 한다. 그러려면, 그리고 그럴 수 있으려면, 스스로 자기의 주관적 질서와 그런 질서들의 질서인 민주주의의 차이를, 자기 자신만의 이른바 ‘정서법’과 그런 주관적 법들의 법인 민주주의의 차이를, 심지어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들과 그것들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의 차이를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힘이 있을 때에야 사적인 질서 안에서 자기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끊임없이 다른 사적인 질서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경쟁해야 할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공적 질서의 구성원인 시민의 지위dignity를 잃게 될 것이다. 분노에 해당하는 영어와 불어 단어에는 ‘dignity’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존엄성’이라고 흔히 옮기는 말이다. 분노는 그것이 박탈될 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한때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신분과 그에 속한 위엄을 박탈당하고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또 한때는 부르주아와 민중들이 자신들에게 자연적으로 속해 있는 권리와 존엄성을 오랫동안 박탈당해왔음을 깨닫고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또 오늘날에는 한국 사회에서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노인과 장년층은 그들대로, 청년과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마땅한 지위와 존엄성을 잃었다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질서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믿는 그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투쟁해서는 오늘날의 이른바 ‘가치의 다신교적 상황’에서 결코 권리와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사적인 질서들을 아우르는 성찰적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와, 그 질서 안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오히려 각자의 권리도 지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적인 분노를 느끼고 표출하는 것, 또 그럴 줄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휴대전화 이용을 중지시키고 한국을 잠시 떠나 있었다. 인터넷 접속이 쉽지 않아서 뉴스도 거의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 시청은 아예 불가능했다. 한국인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그랬더니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일 안 하고 노니까 편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혹시 내가 지금껏 느낀 분노가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사적인 분노의 목소리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 생긴 것은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지금껏 느낀 분노가 일종의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상업적 분노는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지금껏 느낀 분노가 나만의 또는 우리만의 사적인 질서 관념을 가지고 토해낸 분노는 아니었는지….  
 
공진성, <공적 분노의 소멸>,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57-58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5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