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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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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가지 분노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공적인 분노이고, 다른 하나는 사적인 분노이다. 상대적인 질서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믿는 권리가 침해될 때 느끼는 분노가 사적인 분노라면, 그런 주관적 질서들의 질서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권리가 침해될 때 느끼는 분노는 공적인 분노이다. 예컨대,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과 관련하여, 그것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당선을 체계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과, 그렇게 분노하여 이른바 ‘대선결과에 불복’하려는 자들이 현재의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자신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침해한다고 느껴서 분노하는 것은 모두 사적인 분노에 해당할 것이다. Ⓒ 오마이뉴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관련하여 매우 엉뚱하게도 그것이 대선결과에 과연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개입을 비판하는 쪽은 그것이 대선결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개입을 (드러내놓고 옹호하진 못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는 쪽은 그것이 대선결과에 사실상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쪽은 그러므로 분노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저쪽은 그러니까 분노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관적 질서 관념에 기대어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분노하는 것은, 사람의 일로서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적인 분노이며, 그래서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그 반면에, 객관적 질서(질서들의 질서) 관념에 근거하여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분노하는 것은 가히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겠다. 분노한 사람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억울할 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이때 법은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각자의 주관적인 법(질서)에 근거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분통을 터뜨린다. 여름에 만난 파독 광부 출신의 어느 교민은 대사관 직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 자신이 비록 우연히 광부로 독일에 오기는 했지만, 출신 집안으로 보나 그 밖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보나 평범한 광부 취급을 받을 사람은 아닌데, 대사관 직원들이 자신을 한낱 광부출신의 무식한 늙은이로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교민은 젊었을 때 한국에서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했고, 형제들도 한국 사회에서 나름대로 출세했고, 독일에서 광부와 택시기사로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고, 책도 많이 읽어서 상당히 박식한 편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질서 안에서 자신의 지위가 어느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대사관 직원들이 생각하는 질서 안에서 자신의 지위가 그 정도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부당한 대접에 대해 그 교민은 분노했다. 그의 분노는 평등한 권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권리 관념을 인정한 채로 다만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섭섭함과 분노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위의 예에서처럼 어느 질서 안에서 자신이 차지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지위보다 현재 자신의 지위가 크게 낮을 때, 또는 혁명 상황에서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질서 안에서의 자신의 지위보다 타인이 옳다고 믿는 질서 안에서의 자신의 지위가 크게 낮을 때, 아무튼 자신의 믿음과 현실이 충돌할 때,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고 외치며 분노한다. 오늘날 한국사회 곳곳에서 이런 크고 작은 분노의 목소리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것이 사적인 질서(법) 관념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가 크게 두 개의 대립하는 질서 관념을 가진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다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는 않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은 그만큼 더 파괴적일 것이다. 어느 일방이 자신의 질서를 다른 일방에게 힘으로 강요하면, 그 폭력이 분노를 유발하고 그 분노가 다시 폭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사회들이 이런 크고 작은 세계관적 충돌을 겪으면서 결국 사적인 질서들을 통합하는 하나의 공적인 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의 질서 안에서 자기가 자기를 인식하는 대로 타인도 자기를 인식해주기를 요구하는 인정투쟁들의 결과로서, 어느 한 편의 요구만 인정되는 하나의 사적인 질서가 아니라, 가능한 대로 모든 사람의 요구가 표출되고 조정되어 궁극적으로 인정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공적인 질서, 곧 ‘질서들의 질서’가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법들의 법’, 곧 민주주의이다. 이 질서가 유린될 때, 이 질서 안에서 보장받는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그때 표출되는 분노가 바로 공적인 분노이다. 
 
공진성, <공적 분노의 소멸>,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52-54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5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