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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의 근거보다 질서 관념이 우선한다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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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곧 원래의 올바른 상태가 선험적으로 존재함을 여전히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는 시간과 함께 변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은 거의 불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질서 관념과 권리 의식은 사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할지 몰라도, 인체의 구조는 사회에 따라 다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쁜 눈과 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도 눈과 코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으며, 머리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몸은 머리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체의 질서에 비유해 사회적 질서를 설명하려고 했고, 또 그렇게 사회적 질서를 정당화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인체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사회적 질서가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질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그런 질서를 비유적으로 인체에서 발견해냈던 것이다. 어떤 사회적 질서를 인체의 질서처럼 자연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는 원래의 올바른 질서를 파괴하려는 부당한 행위가 되고, 그러므로 또한 그 질서 안에서 권리를 누리던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정치적‧사회적 격변은 질서에 대한 관념들의 충돌이었고 각각의 질서 안에서 보장받던 권리가 체계적으로 침해받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자들간의 충돌이었다. (그에 앞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교황을 정점으로 한 인간들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주장한 것이었다.) 위계적인 질서 관념 안에서 차등적인 권리의 부여가 정당한 것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자연적으로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짜증나게 하는 존재를 넘어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침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모든 사람이 자연적으로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구체제 안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적 권리를 체계적으로 침해하는 존재였으며, 그러므로 또한 분노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화의 역사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감히 네 놈 따위가”라고 소리치며 분노하는 특권계급과 오랫동안 천부의 권리를 빼앗겨왔음을 깨닫고 분노하는 하층민의 충돌로 시작된다. 
 
공진성, <공적 분노의 소멸>,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47-49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4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