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지배를 실효성 있게 관철하기 위해 폭력이 본질적이라 하더라도, 근대 국가의 정당성을 압도적인 물리력과 그것을 통한 공포감 조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힘이 법 자체라면 정당성이란 말의 자리도 없을 것이다. 정당한 국가는 폭력의 문제를 비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 국가는 자신의 폭력성을 무언가 고상한 것으로 포장하거나 상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의 실정성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지금 여기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 지배가 정당하다는 당위를 이끌어내는 식으로―현실긍정의 논리로―국가(정부)가 인민들에게 동의를 강제할 때, 인민들의 외면과 내면은 분열될 소지가 크다. 실정 국가의 무력과 공포정치에 대해 인민들은 외적으로 순응하겠지만 그 내면은 아닐 것이다. 인민들의 내면과 외면의 분열, 이는 근대적 의미의 지배, 곧 자기 지배의 불가능성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 분열이 머지않아 대표성의 분열, 즉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