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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기다린다는 것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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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막막한 세상에서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 사랑에 빠진 나에게 당신은 신처럼 다가오고 때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와 같은 존재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사랑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절망 안에서 사랑은 기다림 그 자체가 된다. 사랑이 언제나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고도(Godot)가 항상 ‘내일’오리라는 소식에 그친 것처럼. 그런데, 그 기다림의 대상이 반드시 저 먼 곳에서 도래하는 무엇인 것일까. -이러한 의미에서 고도는 이 두 사람으로부터 한없이 멀다. 그러나 반대로 고도는 이미 충분히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고도는 극한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즉 이미 도착해 있으므로 이제 도래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희곡에서 몇 번이고 암시된다. 고도의 가까움을 철저하게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두 사람 자신이 고도인 경우일 것이다. 실제로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라는 애칭은 두 사람을 합쳐 고도(신)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 고도라는 이름은 신을 의미하는 영어 ‘God’에, 애칭을 나타내는 프랑스어 접미사 ‘-ot’를 붙여서 만들어진다.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신의 친밀함은 이러한 신의 극한적인 가까움에서 파생하는 성질일지도 모른다.(오사와 마사치, 송태욱 옮김,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그린비)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사랑은 저 먼 곳에 떠 있는 허상이 아니라 이미 극도로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사랑할 수 없게 하는 그 세계가 확인시켜주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당신과 나 ‘사이’다. 오사와 마사치을 빌리면 “사랑이란 ‘나’라는 것과 ‘타자’(당신)라는 것이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 체험이다. 사랑이란 나라는 동일성이 타자라는 차이성과 완전히 등치되는 관계인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타인과의 만남 그리고 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작점이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타자일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알랭 바디우가 말한 사랑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둘의 만남을 통하여 타자성을 사유하는 계기인 것이며 ‘둘’의 진리(vérité du Deux), 타자성의 진리를 만들어내는 사유인 것이다. # 2.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이 자라날 때면 그림자가 일어나는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무재와 은교. 그들의 사랑을 감싸고 있는 것은 그림자와 분리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리공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땅에서 일어서는 그림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이며,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으니 살 수가 없다, 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죽고만다는 것이다. -죽나요. 죽어요. 그렇게 간단하게. 간단하게 죽기도 하는 거예요, 사람은. …내 그림자도 그토록 위협적인 것일까요? 글쎄요, 라고 말하는 무재 씨로부터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걸으며 나는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무재 씨, 죽는 걸까요, 간단하게. 따라가지 마요. 무재 씨가 문득 나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그림자가 일어서더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거예요.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황정은, 『百의 그림자』(2010)) 무재와 은교의 대화에는, 언제 어떻게 자신들의 그림자가 일어서게 되어서 그 그림자를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들어 있다. 그리고 한편 불안과 두려움은 죽음을 다르게 사유하면서 절망적인 현실을 견디어내려는 노력이 함께 자리해 있다. 은교와 무재는 서로에게 자신들의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걱정해준다. 이 조그마한 사랑의 다독임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하나가 등장한다. 무재가 말한다.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즉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림자를 따라가버린 것을 두고 세계가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허망한 일이다. 세계가 허망하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급진적인 사유 방식은 그런 허망한 세계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허무이거나 세계로부터 도피와는 다른 지점에서 읽어야 할 기다림이다. 우리 곁에 널려 있는 숱한 죽음들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라고 한다면, 그 처절한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살 수 있겠는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이치와 같은 것으로 여길 때 허망한 삶은 겨우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차라리 절망과 죽음을 자연의 일이듯이 여기는 것에서 세계를 부정하는 의식은 한층 빛난다. 그리하여 앞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향해 ‘고마워요’라는 인사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세계와 이별하는 의식은 족한 것이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엔 뭘 할까 뭐라고 말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친절하게 충돌해주어서 고마워요.”(황정은, 「낙하하다」(2012))  
 
한순미,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63-267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6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