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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과 몰두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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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깊게 들어가는 것, 그것은 종착지가 없는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 나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 나는 나에게서 빠져나가 당신에게로 간다. 다른 곳에서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당신에게서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지 않는 여행이란 죽음과 같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당신을 만나고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할 수 없는 여행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착색되는 것이다. 본래 서로가 지닌 색깔을 지우는 것이다. 사랑은 어떤 매염제를 쓰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변화하는 염색 행위와 같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일은 본래의 자기 색깔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회귀 불가능성이 바로 사랑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다. 또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여행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이해는 동의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환상이거나 환각일 뿐이다. 사랑은 무심하게 자기를 지우면서 너에게로 무작정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수한 통증과 바늘 자국들, 그리고 뻥뻥 뚫린 그곳을 통과하는 바람 소리와 지독한 출혈”만을 남긴다 할지라도. -그 여잔 의심도 많았습니다. 붉은색에서 붉은색이 나오는 게 아니며 푸른색 또한 푸른색에서 나오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염제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뀔 수 있는 그런 색이 아닌 진짜 색을, 색깔의 본질을, 그 여자는 찾고 싶어 했습니다. (…)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여잔 정말 복잡한 사람이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내면 그만이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먹고사는 일과 하등 상관없는 그런 질문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죠. (…) 그 여자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 여자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사랑의 바늘이 그 여자의 심장을 꿰고 지나간 자리마다 내 이해의 실이 어떤 아름다운 문양을 수놓았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 그러나 사랑의 바늘귀엔 반드시 이해의 실이 걸려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합니다. 사랑에 눈먼 자들의 환각일 뿐입니다. 우리들 사랑의 바늘귀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사랑의 이름으로, 그 여자의 심장을 꿰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무수한 통증과 바늘 자국들, 그리고 뻥뻥 뚫린 그곳을 통과하는 바람 소리와 지독한 출혈……뿐이었습니다.(김현영, 「연인에게 필요한 것」(2012)) 사랑이 언제나 가 닿기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심장을 지나간다 해도 그 자리가 이해의 실로 수놓은 아름다운 문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음이며 누군가의 생에 지독한 출혈의 자국을 새기는 일이다. 이렇게 사랑은 내가 있는 곳에서 저 먼 곳으로 나를 떼어놓는 것이다. 나를 버리지 않고서, 나를 지우지 않고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사랑은 상실이자 몰두이다. 당신에게 몰두하는 순간은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다. 상실과 몰두는 사랑하는 자들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 극단의 증상이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도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아무도 만지지 말라며 여자의 두 팔을 잘랐습니다. 아무에게도 가지 말라며 두 다리마저 잘랐습니다. 남자가 원한대로 아무것도 만질 수도, 아무 데도 갈 수 없게 된 여자는 오직 남자만 바라보았습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여자의 눈 속에 오직 자신만 담길 수 있어서 남자는 행복했습니다. 비로소 남자는 온전히 그 여자에게 속하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눈 속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남자는 자신이 갇혀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여자의 눈 속에서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마침내 남자는 말했습니다. 이만큼 사랑했으니 됐다고. 이제 그만 네 갈 길 가라고. 팔이 없는 여자는 남자를 붙들 수 없었습니다. 다리가 없으니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눈물을 흘리는 것뿐. 남자가 말했습니다. 이별이란 원래가 슬픈 거라고. 그래도 사랑했던 기억만은 잊지 말라고. 사랑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미안하다고. 그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남자의 말은 물론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그 진심을 가지고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김현영, 「눈의 물」(2012))0 알게 모르게, 서서히, 파괴되면서 완성하는 사랑. 중독된 열정은 파괴와 죽음의 경험을 동반한다. 팔과 다리를 잘라 완전하게 소유하게 되었을 때 사랑은 이별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젠 어떤 기억도 진심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어머니가 남긴 동화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너무 슬프고 아름다운 희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유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동화 속의 사랑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어머니와 다른 모습의 어머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낯선 놀라움을 준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에 대해서 아무 것도 확연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 주었고 나에게서 어머니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남긴 이야기가 나에게 던져주고 있는 물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지반을 흔든다. 나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것, 내가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 그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이와 같이 내가 명료한 인식을 상실했을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는 순간에, 아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완전한 패배의 자리에서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시작할 수 있는 행위다.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확신은 불신이 되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없어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습관처럼 사랑하고 습관처럼 이별했던 것입니다.”(김현영, 「눈의 물」) 모든 확신이 불신이 되는 때, 우리는 언제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사랑과 이별은 마치 습관처럼 행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동화 속의 사랑과 구별되는 우리 시대의 사랑에 관한 필름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드문드문해도 사랑이 더 번성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의 사랑은 넘쳐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을 진정 확신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보긴 어렵다. 사랑과 사랑하는 자는 서로를 밀어낸다.  
 
한순미,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56-260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5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