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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의 새벽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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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은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날이었다. 오전 10시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 전당대회서는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선출했다. 당시의 선거 제도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이 지명된 것이다. 당시의 민심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의 관철이었다. 국본은 이날 다수의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한 퇴근시간인 오후 6시에 전국적으로 박종철군 고문 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노래는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정하고, 통일이란 가사 내용은 민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주된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정했고, 그와 함께 “민주헌법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 “행동하는 국민 속에 박종철은 부활한다”,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치기로 했다. 여성들은 고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 스카프 또는 손수건을 흔들도록 했으며, 운전자들은 오후 6시에 경적을 울리도록 홍보했다. 특히 시위는 ‘비폭력 평화주의’가 원칙임을 강조했다. 각 대학에서 학생들이 출정식을 갖고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하여 군부독재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도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본 방침에 따라 이날 오후 6시를 기해 국민대회가 열리던 대한성공회 종탑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성당의 종이 43번 울리는 것을 신호로 성당 안팎의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정치인과 재야인사‧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시위투쟁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전국 514곳에서 50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경찰은 이날의 국민대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원천봉쇄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들의 성난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전경과 시위대의 밀고 밀리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새로운 시위 문화가 출현했다. 학생들은 버스 유리창에 여러 가지 구호를 써 붙이고 즉석에서 만든 종이 플래카드를 끼워놓았다. 한 학생이 버스 위에 올라가 시위를 이끌어가자 모두가 환호성을 올렸다. 6월 10일의 시위는 참가자들이 시위다운 시위를 처음 경험한 날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전국적으로 연행된 사람만 해도 3천 8백 31명에 달했다.  
 
류시현, <87년, 뜨거운 여름>,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28-230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2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