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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 고문 사망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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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학생 박종철(당시 21세)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수사관은 운동권 선배의 소재를 대라고 추궁했고, 강제로 물고문을 시작했다. 수사관들은 양손과 양발을 결박한 다음 등을 누른 상태에서 박종철의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빼는 물고문을 반복했다. 10시간에 걸친 물고문에서 욕조의 턱에 목 부분이 눌린 박종철은 숨을 쉬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박종철의 죽음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1986년 하반기 수배와 연행, 구속, 고문이 더욱 빈번했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5공 권력은 직선제 개헌쟁취를 위한 여러 움직임을 막기 위해 10월 주요 수배자의 조속한 체포를 지시했고, 12월 검거하지 못하면 해당 지역 경찰국장과 서장을 문책하겠다는 초강경 지침을 시달하기도 했다. 나아가 주요 수배자 검거에는 특진과 격려금을 주는 등의 경쟁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중심에 시국사건을 조사, 조작, 발표하기 위해 고문을 자행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존재했다. 1월 20일 박종철의 영정은 그가 다닌 언어학과 과 사무실에서 나와 광장을 지나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 모셔졌다. 학생들의 추모제는 묵념으로 시작되고, “오늘 우리는 /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 솟아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 차가운 날 / 한 뼘의 무덤조차 없이 언 강 눈바람 속으로 날려진 / 너의 죽음을 마주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곁에 맴돌 / 빼앗긴 형제의 넋을 앞에 하고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라는 내용의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는 조시가 낭송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날이 오면>을 함께 불렀다. 추모식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살인정권타도를 위한 관악 2만 학우 궐기대회”라고 쓴 플래카드와 영정을 앞세우고 교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전경들이 교문 진출을 봉쇄했다.  
 
류시현, <87년, 뜨거운 여름>,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19-220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1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