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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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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설에서 해석해낸 ‘분노할 수 없는 현실’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표상된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국사회가 민주화투쟁을 통해 이루어냈다고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적절히 은유한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 누구에게라도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얘기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결과는 또한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는 ‘국민투표’의 형식으로 가려진다. <슈퍼스타K>의 경우 200만이 넘는 이들이 경쟁을 벌인 뒤 천문학적 액수의 상금을 최종우승자 한 명이 사실상 독차지한다. 이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이보다 더 투명하게 비추어주는 이벤트가 또 있을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방위적 유행은 ‘아이돌 음악’이라는 주류 장르를 넘어서 대중음악의 전 영역에 걸쳐 기획사와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나아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가수나 인디밴드 등 비주류 음악인들을 참가자들로 끌어들임으로써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경계도 흐렸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져 보인 것은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절대적인 권위였는데 이들 심사위원 또한 기획사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는 국내 유명 기획사 사장이 직접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에 의해 탈락자가 결정되면 그 판단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참가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 점은 경연 심사가 실제로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의 진실 여부와는 대체로 무관하다. 탈락자를 호명하는 권위주의적 목소리야말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적 성공 요소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의 권위주의는 종종 참가자들에게 인신공격성 독설을 가하는 폭력적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참가자와 심사위원 사이에 세심하게 설정하고자 하는 것은 멘토mentor와 멘티mentee로서의 관계다. 이러한 멘토링을 강조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은 종종 어린 참가자들에게 반말을 쓰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심사위원의 심한 독설조차 참가자들의 성공을 위한, 아니 그들의 인생을 위한 자격 있는 선배의 교훈과 지침으로 간주된다. 참가자와 심사위원 사이에서 연출되는 이러한 멘토링이야말로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신자유주의적 스펙터클로 만드는 핵심적 장치이다. 로또 복권 당첨과도 같은 확률의 오디션 우승이 ‘운’이나 다른 요인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의해 좌우된다고 설득하는 기만적인 게임의 법칙은 이러한 멘토링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최유준, <친밀함의 스펙터클을 넘어>,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06-207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0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