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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음악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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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관련한 최근의 현상에서 두드러지는 한 가지 점이 있다. 유사 이래로 음악이 이토록 안전했던 적은 없다. 서양음악사만 보아도 모차르트의 오페라들, 베토벤의 교향곡은 모두 당대의 귀족들을 비판하고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담아냈던 위험한 음악들이었다. 쇤베르크의 무음조 음악, 존 케이지, 피에르 불레즈,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막가파식 음악실험 역시 경직된 사회와 보수적 세계관에 대한 분노를 담은 불온한 음악이었다. 한국의 ‘민중가요’를 비롯하여 미국의 포크블루스, 록, 레게, 힙합 등 음험했던 대중음악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회적 저항과 분노를 담은 의미 있는 음악 현상을 찾기가 어렵다. 음악 외의 분야는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대중문화에서 최근 몇 년의 사례만 열거해 봐도 텔레비전 드라마 <추적자>나 영화 <도가니>, <26년> 등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다루면서 대중들의 분노 감정을 자극하여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적지 않으며, 일각에서 ‘분노의 상업화’라는 비판적 시각이 제시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대중문화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확산과 일상화된 정리해고, 서열화된 ‘갑을 관계’, 소득양극화와 특권층의 비리 등 사회적 갈등과 이에 따른 사회적 분노가 어느 때보다 전면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된 사실에 속한다. 그럼에도 음악에서 이렇다 할 사회적 저항의 몸짓과 분노 감정 표출의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음악이 ‘예언자적 성격’을 가지고 사회 현실을 선취한다는 아탈리의 진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음악은 우리가 처한 감성적 현실을 직시해주는 듯하다. 사회에 대한 분노는 무의식의 층위에 만연해 있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분노를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음악은 개인의 층위에서 이러한 자기유지의 신체반응을 모방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현 사회의 구조를 음악의 구조로 내재화함으로써 반사회적 충동을 길들인다. 그 어떤 예술영역보다 사회에 대한 반항적 욕구가 분출해야 할 음악이, 오히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안전하게 구획된 문화보호구역에 갇혀 관리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이것은 거꾸로 사회적으로 전면화된 분노 감정이 그 배후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위축되고 억압되며, 길들여지는가를 ‘예언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유준, <친밀함의 스펙터클을 넘어>,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93-194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9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