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까?”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계몽영화>는 이 폭력적인 역사의 반복이 오늘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까?” 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감독의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주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 그래서 영화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구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역사의 주요 지점들을 되짚고 있는 것이다. 학송의 죽음과 장례를 배경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먼저 재개발 사업을 하는 학송의 아들 태한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이 사회의 ‘주류’로 살아간다. 헐값에 땅을 매입하고 철거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그의 모습은 할아버지 길만과도 닮아 있다. 한편 태한의 회사에서 온갖 무시를 받으며 일하는 태선의 남편 성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끊임없이 회의를 느끼고,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함께 살자고 말하는 그에게 태선은 “당신 정도면 주류야. 착한 척 하지 말고, 그만 징징대”라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반복한다. 이렇게 영화는 이 세 사람에게서 길만과 학송의 모습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계몽영화>의 백미는 그동안 감춰졌던 세 인물의 상처가 드러나는 마지막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되던 시간들의 연결지점인 이 부분은, 각 시대가 인물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으며 그것이 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이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길만에게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할 계획을 전하고 피하라는 충고를 한다. 하지만 결국 길만은 회사에 친구를 고발하고 이것을 계기로 부를 축척하게 된다. 다음으로 학송은 유정과 데이트를 하던 도중 갑자기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고, 대청마루 아래로 숨어들어가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어린 태선은 어느 날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의 목을 매달고, 이 장면을 할머니와 엄마가 동시에 목격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후 태선의 남편이 목매달아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이미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기억이 현재의 삶에 출몰하는 지점을 포착한 것이다. 역사가 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반복되어 출몰하면서 이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것이 다음 세대로 전이되어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지는데, 특히 개의 목을 매달았던 어린 시절의 태선과 남편을 자살로 몰고 갔던 어른이 된 태선이 서로를 바라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계몽영화>는 과거의 역사란 언제나 ‘현재’적이라고 말한다. 일제시대와 유신시대를 우리가 직접 겪지 않았을지라도, 그 역사는 세대를 거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이미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긍정할 수 없는 이들에게 지나간 과거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적인 ‘나’의 문제이다.  
 
강소희.주선희, <영화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86-188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8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