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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된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들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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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가니>(2011),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 1985>(2012), <26년>(2012), <지슬>(2012), <노리개>(2013) 등 여러 편의 영화들이 묻혀있던 사건을 호명하면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재현한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도가니법’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을 중심에 두고, 재판과정의 진위여부와 ‘믿을 수 없는 사법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영화들이 우선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관객의 ‘분노’라는 감정이다. 이 영화들은 망각되어버린 비극적 사건을 재현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분노하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에게 유발하는 분노는 대부분 영화를 보는 관람시간에만 한정될 뿐 영화 밖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구체적 삶 속에서 변화를 이끄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지 기억하고 분노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재현하는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분노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와 반성을 담아내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망각된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세 편의 영화―<26년>, <지슬>, <계몽영화>―를 통해 그들이 역사를 호명하는 방식과 그러한 방식의 차이가 드러내는 의미를 다루려고 한다. 세 영화는 모두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의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26년>과 <지슬>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광주와 제주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일어난 무차별적 학살을 다룬 영화다. 전자가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과 이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한다면, 후자는 48년 제주에서 일어난 4‧3을 직접 경험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재현한다. 두 영화는 모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들의 슬픔이나 상처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26년>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각을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모순적 현실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촉구하고, 그것을 동력으로 가상의 복수극을 재현한다. 한편 <지슬>은 억울한 희생을 그리면서도 분노의 화살을 당겨 복수할 대상을 찾기보다 ‘악의 축’을 지워버림으로써 관객을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무고한 죽음에 대한 분노는 망자에 대한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애도로 이어진다. 두 영화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계몽영화>는 역사가 반복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딸이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유신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의 삶과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조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분노할만한 상황들을 제시하지만, 그 원인을 지속적으로 유보시킴으로써 상황들이 연쇄 고리처럼 얽혀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 이제, 망각된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세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이 역사와 얼마나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읽어보자.  
 
강소희.주선희, <영화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71-173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7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