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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의 음악하기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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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사랑노래가 이러한 자본주의적 감정의 소외를 극복하고 현실 속의 물질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현대음악의 자폐적 밀어密語가 아니라 진부하지만 소통 가능한 대중의 언어로 우리의 물화된 신체언어를 깨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실마리는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감정이 처한 자본주의적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안에 참여해 들어가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어느 서울 총각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담은 블루스 가수 김대중의 노래 <유정천리>가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초콜렛을 먹어도 달콤하지 않아요/ 소주를 들이부어도 취하지가 않네요/ 아마 나는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합니다”라며 역설적 어조로 사랑의 감정을 털어놓는 노래 속 화자는 이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산에 도착하면 직업을 구할래요/ 퇴근하고 그대와 원두커피를 마셔요/ 해운대의 달빛보다 그대 눈을 볼래요.” 노랫말 속 “직업을 구한다”는 표현은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낭만적 연인관계에 대한 우리의 상상을 방해하지만, 고된 일과를 끝내고 마주 앉아 “그대 눈을 본다”는 우리의 현실적 감각을 꼬집어 깨우는 듯하다. 만족스럽지만은 않지만, 이 시대의 사랑노래가 ‘상상력의 제도화’에 저항하는 한 가지 작은 몸짓일 수는 있겠다. 태초에 소리는 낯선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은 비명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그것은 친숙한 협화음과 같은 것은 아니다. 새 생명의 낯선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껴안아 그 미세한 심장의 진동에 자신의 심장 박동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음악하기와 사랑하기의 공통된 기원이라 할 만하다. 음악하기는 이렇듯 신체적 동조同調에서 비롯된 타자와의 동조지만, 음악의 이러한 신체 언어로서의 특징은 모든 물질적 요소를 추상적 계산가능성으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적 리듬에 빠르게 흡수되도록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의 음악하기는 너무 쉽게 자본주의적 삶의 제도와 리듬에 동조해 왔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아마추어로서의 예술가와 지식인만이 “신선한 지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아마추어가 단순히 미숙한 딜레탕트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제도로부터 박탈당하고 유배당한 이를 가리킨다. 오직 아마추어(이 단어 속에는 ‘사랑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만이 낙樂이 없는 사회, 사랑할 수 없는 공동체에서 현실의 실패를 대가로 자본주의적 동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음악하기와 사랑하기의 특권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03-204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0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