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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의 불가능성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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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기가 집단적 기억과 연관된 사회적 실천이기만 할까? 어떤 면에서 음악만큼 개인의 내밀한 체험을 이끌어내는 예술양식도 없어 보인다.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음악가인 스티브 라이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브람스와 같은 낭만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가리켜, “단지 위대한 작품일 뿐 내게는 아무 의미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라이시의 이와 같은 말을 뒤집어 보면 오직 나에게만 의미가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오직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열정적’ 내지는 ‘낭만적’ 사랑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랑은 유일무이한 ‘나(동일성)’가 또 다른 유일무이한 ‘당신(타자성)’과 같아지는 것을 뜻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소통가능한 언어적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의 유일무이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랑’의 행위는 잠재적으로 ‘당신’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향할 수 있는 것이 됨으로써 사실상 낭만적 사랑의 전제에 위배된다. ‘나’의 유일무이성이 확보되지 못할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랑하는 주체의 표현은 “사랑합니다”와 같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관습적 언어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언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사치가 자신의 책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에서 전제하는 ‘연애 불가능성’의 테제가 만들어지는데, 이 테제는 결국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표현의 불가능성’이라는 테제로 전이된다. 그것은 ‘나’의 동일성을 담지하고 지시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불가론과도 관련된다. 말하자면, 동일성을 갖춘 ‘나’가 절대적인 의미의 타자로서의 ‘당신’을 향해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 자기지시적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적 언어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했듯이 ‘사적 언어’는 감각이나 감정과 같은 신체적 반응에 기초를 둔 ‘감각 언어language of sensations’여야 한다. 마사치가 책의 후반부에서 음악을 비중 있게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서구 낭만주의 미학에서 그랬듯이 음악은 오래 전부터 문학적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종의 ‘감각 언어’일 수 있다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는 음악작품들이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되어 시도되어 왔던 것도(오페라나 뮤지컬과 같은 음악극에서 주인공의 사랑의 표현이 늘 음악에 실려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음악에서조차 사적 언어의 구성이 불가능하다면 언어 일반에 대해 그렇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악이 사적 언어를 구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며 그것은 마사치의 ‘연애 불가능성’ 테제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된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95-19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9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