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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없어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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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영상이미지로 음악을 표현하는 매체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영상이미지를 가지고 현실적인 시공간을 파편화한다. 그것은 마치 현실과 단절된 꿈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처럼 뮤직비디오는 경험적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다른 가능한 현실을 암시하는 재현매체다. <내일은 없어>(2013)는 남녀 혼성듀엣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의 새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뮤직비디오 제목이다. 그것은 즉흥적인 노래가사를 단순하게 반복하고 순간순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영상이미지들의 몽타주를 보여준다. 적나라한 신체노출, 노골적인 성행위, 폭력적인 제스처로 채워진 영상이미지는 머리보다는 말초적 충동에 호소한다. <내일은 없어>는 1967년 아서 펜(Arthur Penn) 감독이 제작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목: Bonnie and Clyde)를 콘셉트로 잡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을 겪던 시기에 은행강도였던 보니와 클라이드의 만남과 사랑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일까? <내일은 없어> 뮤직비디오는 내일이 없는 “삼포세대”(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세대를 일컫는 말)의 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뮤직비디오의 영상이미지들이 교차하면서 연인관계에 있는 현승과 현아의 갈등이 표현된다. 현승은 술에 취한 채 외국인 여자 둘과 잠들어 있고, 침대 위에 놓인 권총과 돈은 그가 살인청부업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현아는 그 시간 클럽에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잊으려 애쓰고 있는 걸까 보인다. 잠에서 깬 현승은 곁에서 잠자던 여자들을 내쫒고 괴로워한다. 클럽 벽에 기대 선 현아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의 유혹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뿌리친다. 그들은 서로를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들은 만남과 헤어짐, 격렬한 다툼과 후회, 망설임과 불같은 사랑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되었을 때, 각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 나에게 와 말해줘.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망설이지마. 더 늦기 전에 Now. 더 멀리 더 멀리 날 밀어내지 말고. 우리 둘이 지금 여기서 사라지기 전에. 현승은 현아를 자신으로부터 떠나보내려는 마음과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떠나갈까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한다. 그는 그녀를 붙잡지도 놓아주지도 못한다. 그를 비추는 거울엔 그가 아닌 광기어린 표정의 조커가 보인다. 그의 모습과 조커의 모습이 바뀌는 반복된 장면은 그의 분열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듯하다. 몇 장면 지나서 현승을 비추는 거울엔 그도 조커도 아닌 현아가 보인다. 거꾸로 현아를 비추는 거울엔 현승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라는 것, 운명적으로 맺어진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바라봤던 거울은 크게 금이 가 있다. 금이 간 거울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깨지고 파편화된 영혼을 비유한 걸까? 곧이어 골목 한 귀퉁이에 현승의 얼굴이 찍힌 현상수배범 벽지가 붙어있는 장면이 뒤따른다. 그것은 마치 젊은 청춘들을 붙잡으려는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공고문의 알레고리인 걸까 보이기도 한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메커니즘의 부품이기를 거부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내일은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내일은 없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와 같은 현실이지만 마냥 불안해하며 망설일 수 없다. 오늘이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노래 가사가 계속 되풀이 된다. 현승과 현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마음먹고서야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세상에 오로지 두 사람밖에 없는 걸까, 들판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바로 뒤따라 굉음을 내는 두 대의 스포츠카가 현승과 현아의 주위를 돌면서 폭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정사정없는 세계 속에서 두 사람의 거침없는 삶과 위험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걸까 보인다. 그것은 얼핏 열정적 사랑의 형상을 내비친다. 하지만 그것은 틀에 박힌 관습과 제도에 맞서 갈등하거나 아니면 일상으로부터 느닷없는 단절과도 같은 해방의 계기를 품고 있는 열정적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현승과 현아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 채 서로에게 강박적으로 묶여 있는 “공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여주는 만남과 헤어짐, 격렬한 다툼과 후회, 망설임과 불같은 사랑의 반복은 다른 방식으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안전감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관계중독, 즉 사랑중독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랑중독은 열정적 사랑의 변이다. <내일은 없어>는 불필요할 정도로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한다. 그것은 아마도 젊은 세대의 감성에 호소해서 음악의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젊은 세대를 짓누르는 기존 사회의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저항의 암호문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달리 말해서 <내일은 없어>는 한편으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사회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충동과 욕망이 적극적으로 투사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젊은 세대의 충동과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 것이라면,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내일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랑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몸부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일은 없어>는 아방가르드적이고 체제전복적인 저항을 보여주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단지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그러한 저항의 제스처를 모방한 짝퉁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혼성듀엣 이름이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있듯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심각한 ‘트레블 메이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뮤직비디오의 습관적인 수용이 음악시장에서 수동적인 소비로 이어진다고 보고한다. 수용자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동적인 소비를 반복하는 것은 체제순응적인 태도를 훈련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뮤직비디오의 제목처럼 젊은 세대에게 내일은 없고, 사랑도 없을 것이다.  
 
김기성, <사랑의 변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45-49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4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