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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를 기대해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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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drama)는 “행위하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dran”과 명사형 어미 “ma”가 결합된 말이다. 드라마는 말 그대로 인간의 행위를 모방한다. 하지만 단순한 행위가 아닌, 뚜렷한 동기와 목적을 지닌 행위, 대중이 공유할만한 충동과 욕구, 느낌과 감정, 의지와 생각이 담긴 행위, 즉 이야기가 될 만한 행위를 재현하는 매체가 드라마다. 시추에이션 드라마 <연애를 기대해>(2013)는 특정 상류계층이 행하는 분홍빛 판타지를 다루는 기존 드라마와는 달리, 20대 젊은이들의 평범한(!) “요즘 연애”를 그려낸다. 오히려 그 덕분에 짧은 방영횟수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공감대를 얻어냈다. 하지만 <연애를 기대해>는 요즘 연애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꼬집는다. <연애를 기대해>는 한편으로 주연애/정진국 커플과 차기대/최새롬 커플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연애 이야기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주연애와 차기대가 처음에 가상세계에서 SNS 연애상담을 주고받는 관계로 시작했다가 점차 현실세계에서 연애를 방해받을 만큼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관계로 발전하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다. <연애를 기대해>는 주인공 주연애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고 있는 남자친구의 얼굴에 산낙지를 들이 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이 인터넷 동영상에 떠돌면서 그녀는 찰싹 달라붙는 ‘산낙지녀’라는 별명을 얻는다. 주연애는 대학에서 연애 기술을 가르치는 픽업아티스트(PUA, Pick up artist) 필립의 연애특강을 듣게 된다. 필립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연애는 치열한 파워게임입니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만드는 쪽이 연인관계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실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낙지녀는 남자친구에게 집착했기 때문에 연애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필립의 말에 주연애는 분개한다. 나쁜 놈 만나 뒤통수 맞은 건 여잔데, 왜 여자만 바보 취급이에요? 집착 좀 하면 어때서... 사랑하니까 지키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그깟 권력 좀 줘 버리면 또 어때서? 사랑하는 사람 이겨서 어따 쓸 건데? 같은 강의실에서 주연애의 말을 듣던 정진국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모태솔로인 그는 그녀가 마냥 좋다. 그는 그녀와 사귄 후 그녀만을 바라보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무조건 맞춰주고, 그녀를 위해 이벤트와 선물을 아끼지 않는다.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집착하는 정진국의 태도는 예전의 주연애가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주연애는 그에게서 지난 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소유하는 욕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제 상대와 적절한 거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배려이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차기대는 능력은 있지만 가난하다. 최새롬은 차기대를 통해서 남이 보기에 이상적인 자기를 꾸미고 싶어 한다. 그들에겐 다툼도 없고 오해도 없다. 그들은 둘 다 연애관계의 적절한 거리와 적당한 온도를 잘 유지한다. 최새롬은 차기대의 친구들과 만날 때 그를 추켜세우는 것을 능청맞게 잘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그도 자기처럼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 그녀에겐 남의 시선이 둘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이만큼 사랑받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고, 내가 결혼할 사람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다 인정받고 싶어. 오빠를 자랑하고 싶은 거라고 난! 최새롬은 차기대에게 ‘확신’을 달라며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차기대는 “연애 참 비싸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카드대출까지 받는다. 그에게 연애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수단이었다. 차기대는 최새롬에게 운동화를 신겨주며 프러포즈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했던 확신이 아니었다. 부자집 외동딸인 그녀는 자신이 받고 싶은 다이아반지를 직접 사서 그에게 건네면서 자기가 미리 짜둔 이벤트를 친구들 앞에서 해주길 청한다. 차기대가 자신의 청을 들어줬을 때에야 비로소 최새롬은 그의 사랑을 확신한다. 하지만 차기대는 연출한 이벤트에 행복해 하는 그녀의 연출된 표정과 행동을 바라보고 애초부터 둘 사이엔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차기대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그와 연애를 통해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연애는 차기대와 SNS 연애상담을 주고받으면서 지난 날 연애하다 이별했을 때 부렸던 진상들이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상대로부터 버림받은 기분, 자존심이 짓밟힌 기분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는 사실을 차차 깨닫게 된다. 그녀는 꼭 사랑하지 않더라도 같이 있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드라마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서로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 주연애와 차기대는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정진국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그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한다. 차기대는 비를 맞으며 무릎 꿇고 사랑을 고백하는 정진국의 태도를 보면서 주연애에게 마지막 SNS를 보낸다. 산낙지녀에겐 자존심이 우선이라고 했지? 그 사람에겐 무엇보다 네가 우선인가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도 있어. 그게 진심일 때... 자신을 연애의 고수라고 착각했던 차기대는 제대로 된 연애에서 밀당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라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연애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연애/정진국 커플을 통해서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첫 번째 물음, 즉 사랑이 뭐길래,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같이 있어줄 사람, 내 편이 되어줄 사람, 허기진 마음을 채워줄 사람을 찾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독려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의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차가움을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이는 사회의 요구와 강제에 짓눌려 홀로 설 수 없는 자아의 무력함으로부터 비롯된 강박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차기대/최새롬 커플을 통해서 요즘 연애가 연애상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원하는 제스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 전적으로 사회화된 감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존재가치를 정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밀고 당기는 연애는 낭만적 사랑의 변이가 아닐까? 낭만적 사랑의 변이는 나와 너로부터 비롯된 자율적인 욕구가 아니라, 제3자, 즉 사회의 욕구를 욕구하는 타율적인 욕구를 구체화한다. 타율적인 욕구로부터 비롯된 요즘 연애는 정서적이고 심리학적인 공리주의가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차가운 친밀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혹시, 이러한 얼굴의 이면에는 정서적 제국주의의 적대관계가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김기성, <사랑의 변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41-45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4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