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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차돈의 이적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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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신近臣 이차돈이 “청컨대 신의 목을 베어 중의衆意를 정하소서” 하니 왕이 “본시 도를 일으키려 함이거늘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이차돈이 대답하되, “만일 도가 행해진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습니다” 했다. 왕이 이에 군신을 불러 물으니, 군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보건대 승려들은 머리를 깎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으며 말이 괴상하고 거짓스러우니, 이는 상도常道에 어긋납니다. 지금 만약 그대로 방치해 두면 아마도 후회가 따를 것입니다. 신들은 어떤 중벌을 받는다 해도 감히 어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법흥왕 15년(528)에 처음 불법이 시행되었다. 앞서 눌지왕 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에 왔다. 군인郡人 모례가 집안에 굴을 파고 방을 만들어 살게 했다. 그 때 마침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의복과 향을 헌상했다. 군신君臣이 향의 이름과 사용법을 몰라 사람을 시켜 향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물었다. 묵호자가 이것을 보고 그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 “이것을 태우면 꽃다운 향기가 널리 퍼져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통할 수 있다. 이른바 신성으로서는 삼보 만한 것이 없으니, 삼보란 첫째 부처, 둘째 달마, 셋째 승려이다. 만약 향을 태워 축원을 드리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때 왕녀가 병이 들어 위급한 상태에 처하자 왕이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태우고 축원하게 하니 왕녀의 병이 오래지 않아 나았다.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예물을 하사하였다. 묵호자는 왕궁을 나와 모례를 만나 받은 물건들을 주면서 “나는 이제 갈 곳이 있습니다”하고 작별을 청하고는 갑자기 사라져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비처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시자 3명을 데리고 또한 모례의 집에 왔다. 그의 용모는 묵호자와 흡사했는데, 수년 동안 머물다가 병 없이 죽었다. 시자 3명이 남아 경율을 강독하니 이따금 신봉자가 있었다. 이 해에 이르러 법흥왕도 또한 불교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군신들이 믿지 않고 입으로 떠들기만 하므로 왕이 주저하였다. 그러나 이차돈만은 홀로 말하기를 “지금 군신의 말은 옳지 못합니다. 상도를 넘어선 사람이 있어야 상도를 넘어선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듣건대 불교는 그 뜻이 깊다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왕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이 완고하여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고 너는 혼자 다른 의견을 말하는데, 나는 두 가지 의견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하고 형리에게 명하여 목을 베게 하였다. 이차돈이 죽음에 임박하여 말하기를 “나는 불법을 위해 형을 받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영험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고 했다. 이차돈의 목이 떨어지자 잘라진 데서 피가 용솟음치는데 핏빛이 젖과 같이 희었다. 여러 사람이 보고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사를 반대하지 않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4, [신라본기(新羅本紀)], ‘법흥왕(法興王) 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