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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러운 슬픔, 감성의 문화정치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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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이 ‘통곡이 아니라 신음’을 동반하거나 삼켜지는 방식으로 표출된 사례를 들어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사례들을 찾을 수 있을까? 1980년 5월, 10일간의 시민항쟁이 처절한 주검들을 남긴 채 끝나버린 그 날 새벽의 광주의 정적? 만약 이 사례가 적어도 질문에 대한 오답이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슬픔의 본질이나 정체에 관한 적어도 세 가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하나는 사회적 슬픔은 집단적인 죽음 또는 공동체적 상실과 연관되어 있고, 둘째, 그것이 집단적 열망의 좌절과 연관되어 있으며, 셋째, 마음 놓고 우는 통곡으로 표출되지 않는 공동체적 규율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나타나는 ‘정적’은 사전에 약속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참아내고 버티며 그것을 넘어서려는 집단적 무의식, 또는 규율된 감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좌절에 의한 슬픔은 죽음으로부터 발생한 슬픔에서 기원한 2차적 현상이다. 죽음이나 좌절에 의한 슬픔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무력감과 섞여 있다. 이런 슬픔은 ‘서럽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서러운 슬픔은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통째로 드러내기 어려운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직관적 통찰로부터 우리는 서러운 슬픔에 관하여 몇 가지를 덧붙일 수 있다. 그것은 균질적인 공간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족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지방적인 것이기도 하며, 제국이라는 범주를 끌어오면 그것은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걸쳐있는 심리현상이지만 문화나 정치의 경계에 걸쳐있는 역사현상이기도 하다. 여기로부터 감성의 문화정치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는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려고 한다. 2006년에 별세한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고려인 화가 신 니콜라이(한국명 신순남)는 <레퀴엠>과 <찬란한 결혼식>이라는 그림을 남겼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할 때 연해주의 한인들은 수많은 지도자와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이들은 집단적 상실의 경험 속에서 공통의 감성을 발전시켰고, 신 니콜라이는 이런 감성을 어두운 굴 속에서 촛불을 켜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푸른 색 톤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가 표현한 고려인들의 감성이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푸른색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뜬 자신의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1949년 ‘살구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날, 집단농장의 고려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치뤄진’ 자신의 결혼식 모습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붉은 빛깔의 꽃잎이 빛을 받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광경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 슬픔은 한국의 식민지 디아스포라 경험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감성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식민지 경험이나 민족적 이산의 경험 때문에 그의 그림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정근식,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8-20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