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崇禎) 신유년 3월 아무 날에 여흥(驪興) 민군 정능(閔君靜能)의 아내 유인 연안 이씨(延安李氏)가 해산하여 딸을 낳고 며칠 뒤인 아무 간지 날에 마침내 병으로 죽었는데, 그 나이가 겨우 24세였다. 이때에 안동 김창협은 누이를 잃은 지 겨우 몇 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유인의 상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인의 기구함은 참으로 내 누이와 닮았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누구나 자식을 두고 싶어 하는데, 이는 인지상정으로 시인도 이 때문에 〈부이(芣苡)〉 시(詩)를 노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몸을 해쳐 마침내 죽음에 이르고 대를 잇는 일에도 아무런 보탬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천하에 더없이 슬픈 일이다. 내 누이가 불행히 그런 화를 당하더니 지금 유인도 그런 화를 당하여, 수명이 짧고 뜻을 펴지 못하여 부모를 매우 슬프게 한 점이 모두가 닮았으니,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운수가 좋지 못하여 같은 화를 당한 것인가? 하늘은 우리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이리도 심하게 군단 말인가.
비록 그렇기는 하나 유인은 내 누이에 비해 그래도 다행한 편이다. 내 누이는 겨우 16세에, 그것도 시집간 지 겨우 3년 만에 죽어, 생전에 한 번도 시부모의 당(堂)에 올라 며느리 노릇을 해 보지 못하였고, 죽어서도 아이를 보존하지 못하여 열흘도 못 되어 운명을 함께하였으니, 이는 살아생전에나 죽은 뒤에나 무엇 하나 기구하지 않은 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인은 운명할 때의 나이가 내 누이에 비해 8세나 더 많았고 게다가 시댁으로 돌아가 시부모를 모시며 며느리의 도리를 행할 수 있었으며, 으앙대는 아이가 지금까지 아무 탈이 없어 잘 자라 주기를 기대할 수가 있다. 이로 볼 때 어찌 누이보다 낫다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렇기는 하나 나는 누이를 곡한 뒤로, 누군가의 죽음이 내 누이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서글퍼지곤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이 민정능의 아내 연안 이씨가 해산 후 후유증으로 죽자 출산 후에 죽은 자신의 누이가 생각나서 애사로 망자에 대한 애통함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