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야, 할미한테 말해 보아라. 언제 가겠느냐?”
청암부인이 강모 앞으로 허리를 구부리며 물어 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눈매에 엄격한 서리가 서려 있다.
그 눈매의 서리 때문에, 사람들은 부인 앞에서 말할 때 보통은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멋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부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까닭 모르게 이쪽이 얼어붙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소가에서나, 호제, 하인, 비복들이나 과객이나 마찬가지로 그랬다. 그래도 비교적 양자 이기채는 그 깐깐한 성품답게 자기 할 말을 하는 편이었으며, 청암부인 또한 그런 그의 언행을 나무라지 않았다.
강모는 아직 연소한 탓도 있었으나 일찍부터 부인의 보살핌을 지극하게 받은 고로 할머니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청암부인의 심기가 지금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네의 심중 밑바닥에 고여 있던 어떤 힘이나 노여움이 솟구칠 때의 추상(秋霜) 같고도 뇌성(雷聲) 같은 기세를 강모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