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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시하라(西原)의 아타노시(熱田子)의 죽음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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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니시하라(西原)에 고치 구스쿠(幸地城)가 있었다. 그 성주 이름은 아타노시(熱田子)라 했다. 그는 용력(勇力)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가까운 곳에 쓰키무다 아지(津記武多按司)가 살고 있었다. 아타노시와 서로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다. 전부터 아지의 부인이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루는 아타노시가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아지의 부인이 데라사카(亭良佐井)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타노시는 몰래 뒤로 다가가서 부인의 엉덩이를 만지며 희롱하였다. 부인이 크게 화를 내며 아지에게 고했다. 아지는 격노하여 아타노시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아지의 용력을 두려워하여 아직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아타노시가 그 사실을 알고서 책사를 불러들여 의논했더니 “만약 빨리 공격하지 않으면 이쪽이 해를 입게 될 것 입니다. 그를 치기 위한 계책은 이러이러 합니다.”하고 일러주었다.
아타노시는 아지를 만나러 갔다. 아지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렸다. 아타노시가 말하기를 “내가 듣기에 아지에게 보검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부디 한번 보여주시오.”하고 청을 했다. 보검을 보여주자 아타노시가 손에 들고 곧장 보검을 휘둘러 아지를 두 도막으로 베어 죽였다. 그리고 가속(家屬)들도 모두 죽였다. 단지 그 부인만 살려두고 취하고자 했다. 그 부인은 마침내 강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키진(今歸仁)의 아지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격노하여 몸소 대군을 이끌고 죄를 묻고자 북을 울리며 쳐들어갔다. 아타노시는 성안에 군사가 부족하자 한 가지 계략을 꾸몄다. 성 밖으로 나가 사죄하고 나키진 아지를 성안으로 맞아들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위로하였다. 나키진의 군사들이 술에 크게 취한 채로 돌아갔다. 아타노시는 군사를 오나가 촌(翁長村)의 산 북쪽에 매복시켜 두고 나키진의 군사를 쳐부수었다. 나키진은 이때 살해되었다. 이런 연유로 그 산을 가리켜 나키진산(今歸仁山)이라 불렀다.
그런데 나키진 아지에게는 장성한 아들 네 명이 있었다. 아들들이 서로 의논한 끝에 군사를 일으켜 아타노시를 물리치자 아타노시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 무덤이 이시미네 우타키(石嶺御嶽)의 동쪽에 있다. 지금 그 자손들이 오나가 촌에 많이 살고 있어서 그 무덤을 돌보고 있다.  
옛날 니시하라(西原)에 고치 구스쿠(幸地城)가 있었다. 그 성주 이름은 아타노시(熱田子)라 했는데, 그는 용력(勇力)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쓰키무다 아지(津記武多按司)와 서로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다. 아타노시가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아지의 부인이 데라사카(亭良佐井)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몰래 뒤로 다가가서 부인의 엉덩이를 만지며 희롱하였다. 부인이 크게 화를 내며 아지에게 고하였고, 아타노시와 아지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아지가 죽게 되었다. 아지의 아들들이 서로 의논한 끝에 군사를 일으켜 아타노시를 죽였다.  

김용의 역 {유로설전}2010, 전남대학교출판부

 
원저 鄭秉哲 외편{遺老說傳}1978, 角川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