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가사스와카다차라(笠末若茶良)의 죽음과 우타키(御嶽)의 유래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옛날에 구메지마(久米島)의 돈나하(登武那覇)에 가사스와카차라(笠末若茶良)라는 사람이 살았다. 이 사람은 바로 이시키나와 아지(伊敷索按司)의 넷째 아들이다. 그 사람 됨됨이가 도량이 넓고 보통사람과 달랐다. 그 행동거지가 인의(仁義)를 따르고 결코 난행을 부리지 않았다.
그 때 기미마모노(君真物) 신이 출현하여 그의 행실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고서 아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몰래 간계를 꾸며 아들을 주살(誅殺)하고자 하였다. 그 아내가 이를 보고서 여러 번에 걸쳐 “우리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무슨 이유로 해치고자 합니까?”하고 간곡하게 말렸다. 이에 이시키나와(伊敷索)는 크게 화를 내며 그 아내를 아구니지마(粟國島)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이시키나와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돈나하로 진격하여 가지야마몬(梶山門)으로 쳐들어갔다. 와카차라(若茶良)는 뜻밖의 사태를 맞이하여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칼을 들고 대적하였다. 와카차라가 일진(一陣)을 쳐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병사들이 크게 패하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도주하였다. 이미 데바루(平良原)를 지나다 갑자기 다테마스(立增)에 있는 논 속으로 떨어져, 방패로 얼굴을 가리고 숨어있었다. 와카차라는 말에서 내려 급히 달려와 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진흙구덩이 속에서 구해주었다. 그리고 물을 길어 와서 아버지를 목욕시켰다. 이어서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저는 본래 아버지를 해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병사들을 살해한 이유는 단지 그들의 창끝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하고서 이시키나와를 돌려보냈다.
하루는 와카차라가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가서 문안을 드리고자 작은 배에 올라타 아와구니지마로 향하였다. 배가 바다 가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역풍이 불어 오가미사키(拝崎)에 닿자마자 부서졌다. 하는 수 없이 배가 닿은 곳에 내려 잠시 머물렀다. 미야히라 촌(宮平村) 사람이 이를 목격하고 죽을 보내주어 목숨을 구했다.
이 때 헤도노히야(平度比屋)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천성이 간교하고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일삼았다. 와카차라가 암초를 만나 배가 전복되고 잠시 배가 닿은 곳에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 아버지에게 고하기를 “이제 와카차라가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어찌 이 기회에 그를 없애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정병(精兵)을 보내어 아들을 사로잡고자 하였다. 와카차라는 다시 아버지의 병사들과 싸워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살해하였다. 와카차라는 마침내 대승을 거두었지만 자기 몸에 작은 도상(刀傷)을 입은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은 미야히라 촌 사람이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헤도노히야이다. 바라옵건대 천지신명께서 두 사람의 옳고 그름을 가려서 상벌을 내리신다면 이 몸이 구천(九泉)에 가서도 유한(遺恨)이 없겠습니다.”라고 기원하였다. 말을 마치고서 스스로 칼로 목을 베고 죽었다.
후에 두 사람의 자손들은 와카차라가 기원한대로 되었다. 미야히라 촌 사람의 자손은 번창하였으며 헤도노히야의 자손은 모두 병에 걸리거나 독사에 물려서 죽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이 와카차라의 영골(靈骨)을 돈나하에 장사지냈다. 후세에 이르기까지 자주 영험이 끊이질 않았다. 마침내 우타키(御嶽)를 세우고 그를 숭신하였다.  
우타키(御嶽)의 유래를 담은 일본 설화이다. 사람들로부터 아들이 행실이 뛰어나서 칭찬을 듣지만, 아버지는 과히 기뻐하지 않고, 아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몰래 간계를 꾸며 아들을 주살(誅殺)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진흙구덩이 속에서 구해주고 물을 길어 와서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스스로 저주하는 말을 남기고 칼로 목을 베고 죽었다.  
김용의 역 {유로설전}2010, 전남대학교출판부 
원저 鄭秉哲 외편{遺老說傳}1978, 角川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