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최비(斐)는 얼굴이 아름다웠다. 태자궁(太子宮)의 지유(指諭)로 있었는데 태자의 총애하는 여종이 그를 보고 궁전 담 안에서 그를 향하여 유자를 던지면서 유혹하므로 최비가 그만 그 여자와 간통하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왕이 법으로 처치하려 하였는데 이의민의 주선에 의하여 벌을 면하였다. 태자가 그 여종을 내쫓아서 여승(尼)으로 되게 하였으나 최비가 여전히 정이 통하고 있었으므로 최충현이 그의 죄상을 수죄하고 남쪽의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처음 최세보가 집을 새로 지을 때에 한 개 방리(坊)의 4면에 각각 따로 집을 지어 자손들을 위한 영원한 계책을 세웠으나 미구에 가문이 전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