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랑 -- 사랑이란 말은 종교적 의미인 것 이외에는 입에 담기도 싫어하던 말이다 -- 이란 것은 내 의지력과 자존심을 녹여 버렸는가. 또 이 부자연한 고독의 생활이 나를 이렇게 -- 내 인격을 파괴하였는가.
그렇지 아니하면 내 자존심이라는 것이나, 의지력이라는 것이나, 인격이라는 것이 모두 세상의 습관과 사조에 휩쓸리는 것인가. 남들이 그러니까 -- 남들이 옳다니까 -- 남들이 무서우니까 이 애욕의 무덤에 회를 발랐던 것인가. 그러다가 고독과 반성의 기회를 얻으며 모든 회칠과 가면을 떼어버리고 빨가벗은 애욕의 뭉텅이가 나온 것인가.
그렇다 하면, 이것이 참된 나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지어 주신 대로의 나인가. 가슴에 타오르는 애욕의 불길 -- 이 곧 내 영혼의 불길인가.
어쩌면 그 모든 높은 이상들 -- 인류에 대한, 민족에 대한, 도덕에 대한, 신앙에 대한, 그 높은 이상들이 이렇게도 만만하게 마치 바람에 불리는 재 모양으로 자취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말까. 그리고 그 뒤에는 평소에 그렇게도 미워하고 천히 여기던 애욕의 검은 흙만 남고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