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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날만 전해지는 천재 유학자

애(哀)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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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묘청 열전에는 사람들이 “김부식이 평소 정지상과 함께 문장으로 명성이 비등하여 불만을 품고 있던 차에 이때에 이르러 묘청과 내응(內應)하였다는 핑계로 그를 죽였다.”고들 말하기도 했다.
 
정지상의 기록은 그의 최후 기록만이 존재한다. 인종 13년(1135), [고려사절요]가 전하는 그의 최후는 “김부식이 여러 재상과 상의하기를, ‘서경의 반역에 정지상·김안·백수한 등이 가담하고 있으니, 이 사람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서경을 평정시킬 수 없다’ 하니, 여러 재상들이 그렇게 여기고, 지상 등 3명을 불러서 그들이 이르자 은밀히 김정순에게 말하여 무사로 하여금 3명을 끌어내어 궁문 밖에서 목을 벤 뒤에 비로소 위에 아뢰었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규보는 자신의 [백운소설]에서 ‘김부식과 정지상은 문장으로 함께 한때 이름이 났는데, 두 사람은 알력이 생겨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지상이 지은 시가 마음에 들었던 김부식이 이를 달라고 했으나, 이를 정지상이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지상은 서경 천도를 주장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적극 나섰다. 이와 같이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인 성향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김부식은 정지상을 묘청과 함께 제거하였다. 김부식과의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 성향 차이로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이다.  
고려사 열전, 고려사절요 
{고려사}, {고려사절요}, {백운소설}, {연려실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