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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별초를 이끌고 끝까지 몽고에 대항하다 죽음을 맞이함.

애(哀)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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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손(裴仲孫)이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 노영희(盧永禧)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서 사람들을 시켜 도성에서, “몽고군이 대거 침략해 인민들을 살육하고 있으니 나라를 돕고자 하는 자는 모두 구정(毬庭)으로 모이라.”고 외치게 하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1270년(원종 11) 5월 15일 임유무의 무인정권이 정변에 의하여 붕괴되고 5월 23일 개경에의 환도가 결정되자 삼별초를 중심으로 한 반몽 집단은 크게 동요하였다. 개경정부는 이들을 회유하는 한편 5월 29일 삼별초를 혁파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6월 1일 배중손은 삼별초를 움직여 왕족 승화후 온(溫)을 새로운 국왕으로 옹립하고 아울러 대장군 유존혁(劉存奕)과 상서좌승 이신손(李信孫)을 좌, 우 승선(承宣)에 임명함으로써 몽고에 복속한 개경정부를 배격하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어 배중손은 삼별초 반몽세력을 규합하여 6월 3일 강화도를 출발하여 전라도 서남해안의 진도를 새로운 거점으로 정하고 고려의 정통정부를 자임하면서 반몽고 항전을 지속하였다.
제주도를 그 배후 기지로 확보하는 한편 진도와 남해 연안이 갖는 전략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과의 반몽고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1271년(원종 12) 4월 고려·몽고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에 의하여 진도가 함락됨으로써 삼별초 정권은 붕괴하였는데 이때 배중손은 많은 군사들과 함께 최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삼별초 반몽세력의 일부는 제주도로 탈출하여 1273년(원종 14)까지 반몽 항전을 지속하였다. 결국에는 진압군에 의해 일부는 산으로 도망치거나 목을 매 자결하였다. 몽고에 끝까지 대항하다 제주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이다.  
고려사 열전 
{고려사}, {고려사절요}
이기백, {개정판 한국사신론}(일조각, 1989), 183-184쪽.
邊太燮, {한국사통론}(삼영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