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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재건을 위해 개혁을 단행한 공민왕의 처참한 죽음

애(哀)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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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恭愍王)은 1374년 9월 21일 밤 침전에 들어간 최만생과 홍윤 등에 의해 온몸이 칼에 찔려 잔인하게 시해 당하였다.  
{고려사}공민왕은 집권 초기 고려 재건을 위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하지만 집권 후기에는 노국공주와의 사별로 정사를 멀리하는 한편, 늘 후사문제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총애하던 반야가 아들을 낳았으나 이를 태후가 인정하지 않자, 공민왕은 계속 후사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공민왕은 하는 수 없이 익비를 김흥경과 홍윤ㆍ한안 등이 간음하도록 했고, 그 결과 익비가 임신하였다.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아는 홍윤과 최만생을 없애려고 했으나, 그들이 먼저 공민왕을 시해했던 것이다.  
{고려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송은명 지음, {인물로 보는 고려사}(시아, 2009), 277-287.
이기백, {개정판 한국사신론}(일조각, 1989), 195쪽.
邊太燮, {한국사통론}(삼영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