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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비윤씨 추존

애(哀)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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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敎書曰 《春秋》之義 母以子貴 追崇之典 著在《漢史》 念我懷墓 始以德選 正位椒闈 終罹讒口 困於群小 其在丁酉 欲廢中止 旋復鼓瑟之和 至有弄璋之慶 若眞失德 豈有是事 厥後織構日甚 不能自明 廢在私第 遂至大變 當初內間沮之於中 大臣臺諫爭之於外 則以先王聖明 且有寡躬 未必無回天之力 安有投杼之疑哉 予在幼沖 罔有聞知 叨承大統 十年于玆 究問厥由 始得其實 終天之痛 曷有其極 是用廣收群議 追尊爲齊獻王后 陞墓爲陵 其搆成大故者 尙在先朝後宮之列 卽置罪律 其生其死視爲庶人 庶幾正爲邪之辟 雪在天之冤 以伸予哀慕罔極之情 
교서를 내리기를, “《춘추(春秋)》의 의리에, 어머니는 아들로 하여 귀해지고, 추숭(追崇)하는 법이 한(漢)나라 역사이 실려 있다. 생각하건대, 우리 회묘(懷墓)께서 처음에 덕으로 뽑혀 초위(椒闈)에 자리를 정하셨다가, 나중에는 참소를 만나고 소인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정유년에는 폐위되려다가 중지되어 도로 금슬(琴瑟)의 화목이 있고 아들을 보는 경사[螽斯之慶]가 있게 되었으니, 만일 참으로 덕을 잃었다면 어찌 이 일이 있었겠는가? 그뒤 꾸미고 얽어맴이 날로 심하여져 스스로 밝히지 못하고 폐위되어 사삿집에 계시다가 그만 큰 변을 만나셨다. 당초 내간에서는 안에서 저지하고, 대신과 대간이 밖에서 다투었다면, 선왕의 성명(聖明)하시고 또 이 몸이 있으니, 반드시 상의 마음을 돌리는 힘이 없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북[杼]을 던지는 의심이 있었겠는가?
내가 어린 나이로 듣고 봄이 없으면서 외람되이 큰 전통[大統]을 계승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 연유를 캐물어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니, 하늘 아래 다시 없을 그 슬픔이 어찌 끝이 있으랴?”
이래서 널리 여러 의논을 모아 제헌(齊獻) 왕후로 추존하고, 묘(墓)도 높여 능으로 한다. 그 큰일을 얽어만든 자가 아직도 선왕 후궁의 반열에 있으므로 곧 죄주고, 산 자나 죽은 자를 서인(庶人)으로 하니, 거의 간사함을 다스리는 법을 바로잡고 하늘에 계신 원한을 씻어, 나의 애통하고 그립기 이를 데 없는 심정을 펴게 되었노라.”하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던 연산군이 어머니가 폐비, 사사된 이유에 대해서 알고 그 슬픔을 표현한 글이다.  
{燕山君日記} 卷 52, 10年3月 25日(丙戌) 
김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글항아리, 2010).
이기백, {개정판 한국사신론}(일조각, 1989).
김당택, {우리한국사}(푸른역사, 2006).
邊太燮, {한국사통론}(삼영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