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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자사업(國子司業) 윤공(尹公)의 애사

애(哀)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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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奇偉博大眞人天水尹公諱威。字某。系出故元帥侍中諱彥頤。而奕葉門地也。始隱居山中。自號碧松居士。然以明月夜光。不可藏之於暗。故不得已出而從仕。歷踐華要。官至國子司業。其爲人。仁厚醞藉。方正廉約。德行文章。皆備而無缺。飮酒至數斗不亂。嘗自言自娶妻來。不犯他色。此亦人所難者。凡擧措。略苛碎節目。存其大體而已。世因以爲有宰相器。皆必其遠到。不幸出爲西都留守。竟未復而薨。嗚呼。天之布施也如此。公之被斥也。有潛扇之者。雖公亦未甚詳也。予掌記全州時。爲同寮所疾。公出爲廉察使。以嘗厚予。故至是慰遇滋縟。而待彼甚薄。由是銜之。後因事有以微中之也。此不可終祕者。公之卒。如喪昆仲。詞以哀之曰。 
여기에 기위 박대(奇偉博大)한 진인(眞人)이 있으니, 그가 바로 천수 윤공(天水尹公)이다. 공의 이름은 위(威)요, 자는 모(某)이고, 고(故) 원수(元帥)와 시중(侍中) 벼슬을 지낸 언이(彦頤)의 후예인데, 대대로 이름난 가문이다. 처음에 산중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 호(號)를 벽송거사(碧松居士)라 하였다. 그러나 명월주(明月珠)ㆍ야광주(夜光珠)는 어두움 속에 숨어 있을 수 없는지라, 이 때문에 마지못해 세상에 나와 벼슬에 종사하여 두루 높은 자리를 거쳐 벼슬이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이르렀다. 그 사람됨이 인후 온자(仁厚醞藉)하고 방정 염약(方正廉約)하며, 덕행과 문장이 다 구비해 결함이 없는가 하면, 술을 두어 말까지 마셔도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찍이 스스로 “장가든 뒤로부터 지금까지 다른 여인을 범한 적이 없다.” 했으니, 이 역시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무릇 몸가짐과 행동에 있어서 까다롭거나 자질구레한 절목은 생략하고 그 대체를 잡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재상의 기량이 있다 하여 원대한 기대를 걸었는데, 불행하게도 외직으로 나와 서도 유수(西都留守)가 되어 마침내 돌아오지 못한 채 죽었으니, 슬프도다. 하늘의 하시는 일이 이렇게 무심하실까. 공이 배척을 당할 적에 몰래 선동한 자가 있었는데, 공으로서도 그리 상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전주(全州)에 장기(掌記)로 있을 때에 어떤 동료의 미움을 받았는데, 공이 마침 염찰사(廉察使)가 되어 나와서 지난날 나와의 사귐이 두터워 나에 대한 위로가 더욱 진지하고, 그들을 매우 박하게 대접하였으므로 감정을 품었다가 뒤에 다른 일을 기회로 삼아 은밀히 중상한 것인데, 이 사실은 끝내 비밀에 붙일 수 없다. 공이 세상을 뜨자, 마치 나의 백형이나 중형을 잃은 것 같아서 다음의 글을 올려 슬픔을 표한다. 윤위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東國李相國全集} 卷 37, 哀詞, 國子司業尹公哀詞 
박용훈, {고려시대사}(일지사, 2009).
이기백, {개정판 한국사신론}(일조각, 1989).
김당택, {우리한국사}(푸른역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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