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또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아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황무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 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 놓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가 붓대잡고 그 얼굴을 세찰(細察)한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 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그만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가상히 여겨 견책하지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거두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미(蛾眉)의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리운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나열하여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 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데로 판결하여, 역마를 달려 여리(閭里)가 안일하다고 치보(馳報)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흔흔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짖어대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 강어(强禦)를 겁내지 않고 시비가 없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어 그 빛을 날리니, 정사를 폄에 인(仁)을 베풀고 신명에 고함에 규(圭)를 쓴다. 뇌정(雷霆)같이 울려 천위(天威)를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되어 풍년을 이룰 것이다. 파리야, 그때에 남쪽으로 날아오라.
정약용의 1810년 여름 짓는 <파리를 조문하다弔蠅文>이다. 이 글을 통해 정약용은 당시의 참혹한 시대의 슬픔을 고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