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나날,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오르넬라 무티, 린제이 와그너, 엘리다 벨리....
세운상가 다리 위에서 이방의 여배우 이름이나 뇌까리는 것,
세운상가,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
내 세포들의 상점을 가득 채운 건 트레이시와 치치올리나,
제니시스, 허슬러, 그리고 각종 일제 전자 제품들,
세운상가는 복제된 수만의 나를 먹어치웠고
내 욕망의 허기가 세운상가를 번창시켰다
후미진 다락방마다 돌아가던 8미리 에로티카 문화영화
포르노의 세상이 내 사랑을 잠식했다
여선생의 스커트 밑을 집요하게 비추던 손거울과
은하여관 2층 창문에 매달려 내면의 음란을 훔쳐보던
거울의 포로인 나, 오 그녀는 나의 똥구멍
가끔은 서양판 변강쇠 존 홈스가
나의 귀두에 다마를 박으라고 권했다
금발 여배우의 매혹이 부풀린 영화 감독이라는 욕망,
진실은 없었다, 오직 후끼된 진실만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뿐
네가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줄 거야
환한 불빛으로 세운상가는 서 있고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다가간다 잡힐 듯 달아나는
마음 사막 저편의 신기루를 향하여,
내 몸의 내부, 어두운 욕망의 벌집이 웅웅댄다
그렇게 끝없이 웅웅대다가 죽음을 맞으리라
파열되는 눈동자, 충동의 벌떼들이 떠나가고
비로소 욕망의 거울은 나를 놓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