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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욕(欲)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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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혁명은 실패하고 시적화자는 ‘방만 바꾸어’버렸음을 자조한다.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자 마음이나 의지에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가슴이 ‘이유 없이 메’마르는 것은 혁명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녹슨 펜과 뼈와 광기’를 재산으로 삼을 수 있기에 그는 비록 ‘방만 바꾸었지만’ 다시 혁명에 대한 ‘욕망’을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방에 ‘실망의 가벼움’을 ‘긍정적’인 재산으로 삼아 ‘달콤한 의지의 잔재’로 풍성하게 남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2003.  
최하림, <<김수영 평전>>, 실천문학사, 2001. 이은정,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살림출판사, 2006.